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전당대회 송영길 캠프 돈봉투’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놓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7일 대국민 사과와 송영길 전 대표 귀국 요청 등 후속 조처에 나섰다. 당내 위기감이 고조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애초 ‘기획수사설’에 무게를 뒀던 당 지도부가 금품 수수의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통화 내용이 공개되고 연루자가 늘어나자 주말 새 검찰 수사에 ‘운명’을 맡기는 쪽으로 급변침한 모양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가운데, 지도부가 사실상 송 전 대표의 ‘결자해지’ 외에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터라 당 일각에선 ‘위기를 타개할 의지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어젯밤 (지도부 회의에서) 오랫동안 토론과 고민이 있었지만 자체 조사가 여러가지 상황이나 여건상 여의치 않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송영길 전 대표가 (프랑스에서) 조기 귀국해 수사기관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책임 있는 자세로 응할 수 있도록 당이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불거진 뒤 민주당은 전날인 16일까지도 “당의 적당한 기구를 통해 진실규명을 하겠다”(강선우 대변인)는 방침이었으나, 자체 조사 대신 검찰 수사로 돌아선 것이다. 당내에서는 외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단을 꾸리는 방안도 제시됐으나, 지도부는 이 또한 강제수사 권한이 없는 상태에선 ‘보여주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봤다.
이런 결정의 배경을 두고 권 대변인은 “당의 조사라는 게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라 실효성 있는 조사 결과를 내놓긴 어렵지 않겠냐는 게 (전날 밤 지도부 회의의) 중론이었다”고 설명했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가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공식 발언을 삼간 것은 사태 초반 ‘검찰의 기획수사’에 무게를 뒀던 까닭이다. 이재명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돈봉투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 윤관석·이성만 의원 압수수색 직후인 13일 “사람들 진술을 통해 객관적 진실을 왜곡, 조작하는 검찰 행태가 일상”이라며 검찰을 꼬집었다. 이 대표 스스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투쟁해온 상황에서 당내 의원들의 수사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돈봉투 의혹에 연루된 의원이 최대 20명으로 추정되는 등 자칫 당 전체가 격랑에 휩쓸릴 수 있단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면서, 지도부도 이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지도부가 “정치적 고려 배제”(이재명 대표)를 전제로 검찰 수사에 무게를 실어준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대표가 검찰에 ‘신속·공정한 수사’를 요청함으로써, 민주당은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이번 사태의 전개를 오롯이 검찰 손에 맡길 처지가 됐다. 지도부는 프랑스 체류 중인 송 전 대표가 귀국할 경우 당 차원에서 별도로 소명을 듣겠다는 계획이지만, 그가 “이 일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진상을 얼마나 파악해낼지도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도부의 판단이 안이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비이재명계 의원은 “당에서 새로운 단위를 구성해 조사위원회를 꾸리든 뭘 하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의혹에 떳떳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우리가 뭘 쥐고 있어야지, 안 그러면 검찰이 하는 대로 끌려갈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이 대표의 사과가 늦었다. 최소한 송 전 대표를 포함한 3명은 출당시켜야 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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