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를 위선과 무능, 부패 정권으로 규정하고 ‘공정’과 ‘상식’을 내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문제로 ‘시험대’에 올랐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뭐가 잘못된 거냐’며 항변했으나 오후엔 부인의 ‘사과 의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오락가락 행태를 보였다.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정부와 부딪치면서 쌓아올린 ‘공정’이라는 가치를 자기 손으로 허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후보는 15일 낮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배우자와 관련해 여러 의혹이 나온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강한 어조로 “ (시간강사는 ) 무슨 교수 채용하듯이 , 전공 이런 거 봐서 공개 채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러분들 가까운 사람 중에 대학 관계자가 있으면 시간강사를 어떻게 채용하는지 한번 물어보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권성동 사무총장 등 참모들이 만류했지만 윤 후보는 개의치 않고 손짓을 더해가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앞서 김씨는 2007년 수원여자대학교에 제출한 교수 초빙 지원서에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 기획이사로 일했고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허위내용을 적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이 지원서를 제출한 뒤 겸임교수 자리를 얻어 11개월 일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김씨의 겸임교수직을 ‘시간강사’라고 주장했고 “‘어디 석사과정에 있다’ ‘박사과정에 있다’ 이러면 (채용 담당자가 임용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공개채용이 아니다”라며 부정 채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기자들을 향해 “채용 비리라는데 이런 자료를 보고 (겸임교수를 ) 뽑는 게 아니다. 현실을 잘 보시라. 관행이라든가 이것에 비춰봤을 때 어떤 건지 좀 보고 (보도)하라. 저쪽에서 떠드는 거 듣기만 하지 마시고”라며 격앙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문서 위조,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 김씨의 허위경력 논란은 윤 후보에겐 부메랑이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용 표창장 위조에 적용한 혐의와 똑같기 때문이다. 김씨의 허위 이력서가 대입이 아닌 겸임교수 자리를 얻기 위한 것이어서 경중이 다르고, 공소시효도 지나 형사적 책임이 없다고 해도, 본인 주변의 부정행위에 윤 후보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그가 말하는 공정 가치의 진정성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후보는 사과가 아닌 반박을 택했다. 이로부터 약 4시간 뒤인 이날 오후 윤 후보는 “본인 입장에서 할 말이 아무리 많다 해도, 여권의 공세가 기획공세이고 부당하게 느껴진다 해도, 국민 눈높이와 기대에서 봤을 때 조금이라도 미흡한 게 있다면 송구한 마음을 갖는 게 맞는다. (사과할 의향이 있다는) 그런 태도는 적절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다”는 김씨 발언 뒤의 메시지였다. 윤 후보가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마지못해 물러선 것이지만 이마저도 후보 본인이 사과한 게 아니라 부인의 사과 의향을 ‘평가’한 것에 머물렀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온종일 언론의 김건희씨 관련 질문에 ‘제대로 취재하라. 저쪽 얘기만 듣지말라’며 역정을 내더니 이제는 그것도 부족해 정당한 검증을 ‘공작’으로까지 몰아붙이느냐”며 “잘못은 없지만 그래도 국민들이 불편하다니 마지못해 사과는 한다는 오만불손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대선에 도전한 윤 후보 정치 행보에 치명상을 남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윤 후보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참여 근거와 구실을 없앤 것”이라며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정보로 편익을 취하고 절차를 어긴 측면이 드러났다. ‘윤석열의 공정’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정권 교체 여론에 윤 후보가 가진 ‘공정’이라는 상징이 손상된 모습”이라며 “윤 후보 대응은 그간의 행보와도 안 맞는 측면이 있다. 또 이런 리스크가 어느 정도 파악된 상황이었는데도 국민의힘이 선대위 차원의 준비 부족을 드러낸 것도 의아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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