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현(65) 광주시장 당선자는 ‘광주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린다. 안과 의사 출신으로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와이엠시에이(YMCA) 전국연맹 이사장을 지냈다. 올해 초 새정치연합(안철수 신당) 소속으로 광주시장 출마설이 오르내릴 당시 ‘광주의 박원순’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3월 초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5월부터 ‘전략 공천’ 논란에 휘말렸다. ‘안철수 낙하산’이란 꼬리표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붙어다녔다. 예상을 깨고 크게 이겼지만, 당선 이후인 지금도 그 부담감은 여전하다. “지도부가 광주 선거에 몰입하느라 수도권에서 졌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안팎의 평가가 나왔다. 이에 대해 그는 “광주의 선택에 대한 시민들의 자긍심을 헤아려달라”고 했다.
-예상보다 큰 표차로 당선됐다. 승리 요인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정치인·관료가 아니라, ‘광주 정신’에 걸맞는 시민운동가 출신을 시장으로 뽑아보자는 판단에 더해, 박근혜 정부 출범 뒤 한국 사회가 겪은 아픔을 돌아보며 전략적 선택을 시민들이 하셨던 거 같다.”
-강운태·이용섭 후보가 단일화하면서 지지율 격차가 벌어졌다.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그랬다. 그런데 두 분의 단일화가 ‘가치’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른 결합이어서 컨벤션 효과가 크지 않았던 거 같다. 저에 대해선 시민운동하는 의사라는 것 말고 알려진 정보들이 많지 않았는데, 선택이 임박하자 윤장현이 대체 어떤 인물인지 눈여겨 보기 시작하신 거 같다.”
-당선 뒤 안철수 대표와 만나 무슨 얘기를 했나.
“안 대표도 초조하고 맘 고생이 심했던 거 같더라. ‘수고 많이 하셨다’, ‘고맙다’ 이런 덕담 나눴다. 안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하다.”
-선거가 끝난 뒤 ‘지도부가 광주에 매달리는 바람에 수도권에서 졌다’는 평가가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나왔다.
“자력으로 지지층을 만들어내지 못한 내 한계도 있었다. 다만 새정치연합이 광주에서 패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과연 광주 승리가 안철수 대표와 지도부만을 위한 승리였을까? 역사 속에서 광주가 내려온 판단과 선택에 대해 시민들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 당내의 그런 평가들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다.”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합당하지 않고, 윤 당선자가 제3당 후보로 나섰더라면 선거 치르기가 더 수월했을까?
“신당 후보로 나와 민주당 후보와 겨루는 구도였다면, 시민들을 설득할 논리도 확실히 서고, 선거 국면도 주도할 수 있었을 거다.”
-시민후보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렀지만, 지역 시민단체들의 적극 지원은 없었다.
“친분있는 시민단체 사람들한테 절대 선거캠프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좋지 않을 뿐더러, 나 스스로 당당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지역 국회의원 5명의 지지선언이 나온 뒤 시민사회가 둘로 갈렸다. 아프고 힘들었다.”
-안 대표 쪽 사람들과는 ‘코드’가 잘 맞나.
“합당 직후 안 대표 쪽이 정강정책에서 5·18, 6·15 조항 삭제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안 대표한테 뭐가 사실이냐고 격하게 따졌다. 그랬더니 (안 대표가) 아니라고 하더라. 안 대표에게 명확하게 입장 표명하고 광주 내려와 사과하시라 했다. 이틀 뒤 안 대표가 광주로 왔다. (5·18 삭제가) 안 대표의 의중이 담긴 것이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싸웠을 거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곧잘 비교된다.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안다.
“선거 끝나고 6·10 항쟁 기념식장에서 만났다. 박 시장이 ‘선배님, (광주랑 서울에서) 우리 멋지게 잘 해봅시다’ 하더라. 큰 힘이 됐다.”
-박 시장과의 ‘정책 협약’도 생각하고 있나.
“내가 요청했다. 인수위 꾸린 뒤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서울을 다녀오게 했다. 한 팀을 더 보낼 계획인데, 서울에서 뿌리내려 잘 시행되고 있는 현장 정책들 가운데 광주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있다. 박 시장 모델을 따라간다기보다, 잘 되는 좋은 정책은 적극적으로 배우고, 광주만이 갖는 역사성과 강점들을 접목시킬 생각이다.”
-어떤 시정을 펼치고 싶나?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불안과 양극화 아닌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광주식 해법을 찾고 싶다. 얼마 전 시장 관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면 소외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
-‘안으로 따뜻하고, 밖으로 당당한 광주’를 강조해왔다. 1980년 5월의 ‘광주 공동체’를 시정에 구현하고 싶다는 뜻으로 읽힌다.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다만 34년이 지난 지금, 어떤 절차와 정책을 거쳐 그 꿈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공권력의 공백상태에서도 강도·사재기가 없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헌혈을 하러 병원에 줄을 서고….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광주 코뮌’이라 이름 붙인 그 원형질의 경험은 광주의 가치이자 지향점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돼야 한다. 그 안에서 행정의 공공성도 확보될 수 있다. 행정이란 재화 역시 물이 흐르듯 낮고 어려운 쪽부터 채워져야 한다.”
-먹고 사는 건 또다른 문제다.
“시장 출마를 권유받고 망월동 (김)남주 묘지에 가서 물었다. ‘어이 남주, 그냥 당당해질 수 있는 거여? 넉넉해지지 않고도 당당할 수 있는 거여?’ 결론은 ‘풍족하진 않아도 쪼들리진 말아야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일할 수 없는 분들은 보살펴드리고, 고용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에 부단히 도전할 생각이다.”
-지역 정치인들이 토호 세력과 유착해 기득권화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개혁 대상’인 정치인들 도움을 받아 당선됐는데, 시정을 펼치는 데 족쇄가 되지 않을까?
“광주 국회의원들이 나를 지지했던 이유가 기존 후보들을 통해서는 지역의 기득권 구조를 깨뜨리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셨기 때문이라 믿고 싶다. 만약 그분들이 ‘윤장현은 시민운동 하면서 딴지나 걸어온 인물이고, 시정을 맡기기엔 불안하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거다.”
-도시철도 2호선 문제와 관련해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건가?
“지하철 1호선 만들 때 반대했다. 승객 분담률은 2.8%밖에 안 되는데, 하루 1억원씩 적자가 쌓인다. 토건업계와 지역 일각에선 기존 노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호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는데, 후속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면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첫 인사를 앞두고 있다. 측근을 중용하면 공직 사회가 동요하고, 그냥 뒀다가는 관료집단에 포위될 수 있다.
“요즘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선거 때 도와주신 분들 찾아다니며 ‘조용히 계시는 게 돕는 거다’라며 청 드리는 거다. 관료조직을 무작정 불신하지 않는다. 핵심은 시스템 안에서 하는 거다. 저항이 있을 거다. 하지만 온전히 내가 결단하고 짊어져야 할 몫이다.”
광주/정대하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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