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관악구의원이 지난해 12월 만든 유튜브 영상에서 ‘여성안심귀갓길’ 예산 삭감을 홍보하고 있다. 최인호 유튜브 동영상 캡쳐
한낮 ‘묻지마’ 강간살인 사건이 일어난 서울 신림동 공원을 관할하는 관악구가 폐회로티브이(CCTV) 설치를 포함한 올해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전액 삭감했었다고 한다. 여성을 겨냥한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마당에 관련 예산을 없앴다니 어이가 없다. 예산 삭감을 주도한 구의원은 자신의 유튜브에 ‘전국 최초 여성안심귀갓길 전면 폐지’라는 홍보 영상을 올리고 “앞으로도 페미니즘 관련 예산을 손보겠다”고 공언했다. 공인의 자격이 의심되는 한심한 행태다.
20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구의회에서 열린 예산안 심의에서 여성가족과 소관인 올해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예산 7400만원이 전액 삭감됐다. 삭감된 예산은 도시재생과가 담당하는 ‘안심골목길’ 조성 사업에 포함됐다. 관악구는 예산 삭감을 요구한 국민의힘 최인호 구의원에게 두 사업의 차이를 설명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당시 회의록을 보면, 담당과장은 “(여성안심귀갓길은) 경찰서와 협업을 해서 범죄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고 “도시재생은 일반적인 사업”이라고 설명했지만, 최 구의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예산안 심사가 끝난 뒤 올린 홍보 영상에서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으로 남성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며 “관악구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안심귀갓길이 사라진다”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대놓고 자랑했다. 이게 자랑할 일인가. 도대체 누구를 향한 자랑인가. 최 구의원은 지난해 9월 정례회의 때는 “페미니즘은 성파시즘” “성파시즘이 초래하고 있는 성위기는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등 노골적인 ‘여성 혐오’ 주장을 폈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범행 장소에) 시시티브이가 없다는 걸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관악구가 예산을 없애지 않고 원래 목적대로 집행했다면 이번 범죄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찰청이 2020년 발표한 용역 결과를 보면, 시시티브이가 설치된 곳에서는 감시 범위(100m) 안에서 야간에 발생하는 5대 범죄가 약 11%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유족들은 ‘일베’ 성향 누리꾼들의 여성 혐오적 댓글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일각의 비뚤어진 ‘여성 혐오’ 인식이 얼마나 위험 수위에 이르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이대로 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