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야산 현장. 연합뉴스
“주변에 유아원이 많아 아이들도 자주 오고 봄에는 꽃도 많이 펴 ‘개나리 동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예쁘고 좋은 곳이었는데 이제 끔찍한 곳이 됐습니다.”
18일 오전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생태공원. 전날 오전 이곳 등산로와 연결된 야산에서 30대 남성이 대낮에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인근 주민인 70대 김아무개씨는 오전 10시쯤이면 이곳으로 매일 운동을 나오지만, 전날 흉악 범죄가 발생했단 소식을 듣고 혼자 다니기 무서워 지인과 함께 나왔다. 김씨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무섭다. 치안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도 잠자리채를 하나씩 손에 쥔 15명 안팎의 4~6살 어린이집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인솔 교사 6명을 따라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인솔 교사들은 평소보다 긴장한 기색이었다.
범행 현장은 도보로 20분 남짓한 거리에 주택과 아파트가 있는 데다 인근에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만 6곳이 넘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단골 야외활동 장소이기도 하다.
ㄱ씨는 구립 어린이집 인근 입구에서 공원으로 진입해 둘레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이 발생했던 동산은 공원과 둘레길로 이어져 평소에도 산책하기 위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여름에는 숲이 우거져 낮에도 으슥한 느낌을 준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ㄱ씨가 “그곳(공원)을 자주 다녀 폐회로티브이(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범행 장소로 정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강간하고 싶어 범행했다”며, 지난 4월 성폭행을 목적으로 손가락 마디에 끼우는 금속 재질의 둔기인 너클을 인터넷으로 구입한 뒤 범행 당시 양손에 끼우고 피해자를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성폭행을 목적으로 한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ㄱ씨는 등산로를 걷다가 지나가던 피해자를 발견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ㄱ씨는 범행 당일 오전 9시55분께 금천구 독산동 주거지에서 출발해 오전 11시1분 관악산 둘레길에 도착했다.
경찰은 일정한 직업 없이 부모와 같이 사는 ㄱ씨가 과거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는 받지 않았다는 가족의 진술을 확보해 병원 진료 이력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날 강간상해 혐의로 ㄱ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피해자는 의식불명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경찰청에 현장 치안 활동 강화를 주문하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서울시도 인공지능형 폐회로텔레비전을 늘리고 범죄 예방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박시은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