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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뉴스 해독제가 필요해

등록 2020-12-01 17:30수정 2021-10-15 11:24

월성원전 1호기 폐쇄를 둘러싼 논란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번졌다. 가동이 중단된 경주시 양남면 월성 1호기(오른쪽)가 보인다. 연합뉴스
월성원전 1호기 폐쇄를 둘러싼 논란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번졌다. 가동이 중단된 경주시 양남면 월성 1호기(오른쪽)가 보인다. 연합뉴스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백악관 비워줄 날을 받아놓은 도널드 트럼프는 어찌 보면 시대를 읽고 활용한 인물이다. 진실을 판정하는 데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는 ‘탈진실 시대’ 말이다. 그가 즐겨 쓴 수법은 이렇다. 거짓에 사실을 적당히 버무려라. 효과가 배가된다. 거짓이 들통나도 계속 뻗대라. ‘대안적 사실’을 말한 거라 눙쳐도 좋다. 무엇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람만 보고 가라. 그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겠지만, 거짓의 ‘유용함’에 그저 환호할 테니.

남의 나라 괴짜 대통령이나 광고에 몸이 단 유튜브 1인 방송의 일탈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국내 언론의 뉴스에서 자주 보는 일이다.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부정책을 주저앉히려, 일부 언론은 기꺼이 트럼프 흉내를 낸다. 여럿이 입을 모아 합창하니 거짓은 마침내 ‘진실스러워’진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보도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 같은 보수신문과 일부 경제지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세계적 발전설비업체 두산중공업을 부도 위기로 몰았다 주장한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부실, 정말로 탈원전 때문일까?’라는 한겨레 <이코노미인사이트> 기사(6월10일치)는 이 회사가 지난 10년간 3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음에도 대규모 적자를 본 것은 경영이 어려운 자회사 두산건설에 2조원 가까운 돈을 수혈해준 게 주요인이라 밝힌다. 2012년 7조9천억원이던 매출이 2019년 3조7천억원으로 반 토막 난 것도 현 정부 이전부터의 일인데다, 신재생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세계 발전시장 흐름을 못 읽고 화력과 원자력에 집중한 때문이다. 이는 두산중공업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산업자원부나 환경단체는 여러번 설명자료를 내 거짓된 보도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이들 ‘친원전 매체’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는 언론 기사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는 언론 기사들.

탈원전 때문에 한국전력이 작년과 재작년 막대한 적자를 냈다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 친원전 매체들은 원전가동을 줄이느라 천연가스 같이 비싼 연료를 더 써서 적자가 났다고 주장한다. 최근 실린 윤순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에너지 전환, 이제는 생산적 논의를 시작하자’ 칼럼(11월26일치)은 이런 보도가 억지임을 보여준다. 한전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원전 가동률은 비슷했지만 국제유가가 떨어져서다. 그동안 한전이 “국제유가 변동이 손익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원전 가동률 하락도 안전점검을 위해 더 세운 탓”이라고 계속 해명을 해도, 이들은 한사코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 보도한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번져나간 월성원전 1호기 폐쇄에 대해서도 친원전 매체는 “쓸 만한 원전인데 이념에 사로잡혀 조기 폐쇄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이춘재 사회부장의 칼럼 ‘월성1호기 원전 수사의 함정’(11월19일치)은 이런 주장이 전후 맥락을 소거한 왜곡임을 보여준다. 30년 넘은 노후 원전에 불안을 느낀 지역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안전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2022년까지 연장 가동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 뒤 정부가 원전을 영구 폐쇄했고, 소송의 실익이 없어져 2심은 각하 판결을 내렸다. 원전 수명 연장이 불법이라는 1심의 판단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이처럼 앞뒤 안 보고 몰아쳐서 기정사실화하는 언론의 보도가 탈원전에 대한 것뿐 아니다.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 대란이 발생했다는 최근의 보도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모든 경제난의 근원이라 매도하는 보도에서도 이런 몰아치기가 목격된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난 3개월 새 전세 물건이 줄고 가격이 오른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무엇이 주요인인지 전문가 조차 속시원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혹 기존 세입자의 계약연장이 크게 늘어서 생긴 일이라면 장점도 적지 않은 것이고, 전세난 책임을 들씌워 법을 폐기할 일은 아니다. ‘임대차 3법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 했나요?’(11월7일치), ‘동네북 임대차 3법, 더 강력해져야 한다’ (11월17일치), ‘임대차 3법에 의한 전세난은 가짜입니다’ (11월26일치) 같은 한겨레 칼럼은 부분이 아닌 ‘전체 그림’을 찾아가는 모색이었다.

의도를 가진 언론의 거짓·왜곡 보도에 한겨레는 앞에 든 예처럼 기사와 칼럼을 통해 정확한 내막을 밝히려 노력했다. 하지만 굽은 것을 바로 펴는 ‘해독제’ 역할까지는 아직 멀어 보인다. 거짓을 발설하기는 쉬우나 이를 바로잡기에는 몇배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해명하려 할수록 상대의 프레임을 굳혀줄 위험도 있다. 그렇더라도 언론이 퍼트리는 큰 거짓말에는 팩트체크를 활성화해 강고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 기만이 진실의 옥좌에 오르기 전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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