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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두산중공업의 부실, 정말로 탈원전 때문일까?

등록 2020-06-10 07:59수정 2020-06-10 09:09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국책은행에서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지원한 이후 두산그룹이 내놓을 자구안에 촉각이 쏠리는 가운데 두산솔루스 매각 방안이 부각되고 있다.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이 두산솔루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부상, 채권단의 고강도 자구안 요구에 두산 일가의 사재 출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두산타워. 연합뉴스
국책은행에서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지원한 이후 두산그룹이 내놓을 자구안에 촉각이 쏠리는 가운데 두산솔루스 매각 방안이 부각되고 있다.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이 두산솔루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부상, 채권단의 고강도 자구안 요구에 두산 일가의 사재 출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두산타워. 연합뉴스

“이게 다 탈원전 정책 때문이다.”

“아니다. 사양산업에 매달리고 부실 자회사를 지원한 결과다.”

두산그룹 핵심인 두산중공업 부실원인을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보수 진영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문제 삼고, 진보 진영은 경영진 책임으로 화살을 돌린다. 시가총액 1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민간 발전기업인 두산중공업이 구조조정까지 한 이유는 뭘까.

두산중공업 부실원인을 찾으려면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본업인 발전사업에서 10년 동안 영업이익을 낸 회사가 왜 대규모 적자(당기순손실) 늪에 빠졌을까.”

본업서 10년째 돈 벌고도 적자…자회사 지원에 1조5천억원 손실

기업이 본업에서 영업이익을 내도 대출원리금 등 금융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거나 본업 이외 투자에서 영업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까먹으면 결과적으로 적자를 낼 수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영업이익을 냈다. 10년 누적 이익은 약 3조원(이하 별도 재무제표 기준)이다.

이 기간 당기순손익은 1조3천억원 누적 적자를 냈다. ‘영업 외 비용’ 2조6천억원, ‘금융비용’ 1조9천억원으로 둘을 합친 비용이 영업이익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산중공업 부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이 눈덩이 비용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야 한다.

2조6천억원대 영업 외 비용의 상당액은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건설 주식에서 생겼다. 기업이 자회사 주식을 사들이면 이를 회계장부에 투자주식으로 기록하고 그 자산 가치를 매년 재평가한다. 만약 주식을 보유한 대가로 모회사가 얻을 미래 이익이 장부 가격보다 적다면 실제 가치에 맞춰 장부 금액을 낮추고, 내린 금액은 그해에 영업 외 비용으로 반영한다. 이를 ‘자산 손상차손’이라고 한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두산중공업의 두산건설 투자주식에서 발생한 손상차손은 1조5천억원에 이른다. 전체 영업 외 비용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두산중공업은 자회사 두산건설이 부동산 경기침체와 대규모 아파트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자 2조원에 가까운 돈을 수혈해줬다. 그 결과 두산중공업의 두산건설 지분이 계속 늘어났으나 정작 그 가치가 하락해 결과적으로 모회사에 큰 평가 손실을 안긴 것이다.

만약 두산건설을 지원해 손상차손이 없었다면 두산중공업 적자는 상당히 줄어든다. 두산중공업이 본격적으로 적자 늪에 빠지게 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적자액은 1조7천억원가량이다. 하지만 두산건설 투자주식의 손상차손인 1조5천억원을 빼면 회사 적자는 2천억원 정도로 줄어든다. 전체 적자 규모가 8분의1 수준으로 축소된 셈이다.

먹거리 줄고 빚 부담 커져… 국내 원전 지어도 흑자 전환 역부족

두산중공업 수주 부진도 경영난을 부채질했다. 계열사 지원에 돈을 쏟아붓기엔 회사 자체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두산중공업 매출은 2012년 7조9천억원에서 2019년 3조7천억원으로 7년 만에 사실상 반 토막 났다. 수주 감소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수주 잔액은 2011년 23조원에서 2019년 14조2천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0조원에 육박했던 연간 신규 수주가 최근 들어 4조원 안팎으로 급감한 여파다.

두산중공업 주력 사업은 화력과 원자력 발전 분야다. 문제는 시장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시장에서 화력·원자력 투자액은 2010년 1880억달러에서 2018년 1740억달러로 7% 줄었다. 세계 각국에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두산중공업의 강점인 화력·원자력 발전 일감이 줄었고 중국·러시아 업체 등과 수주 경쟁이 부쩍 치열해졌다. 금융비용 증가는 이런 이중고의 결과다. 회사 성장 정체, 자회사 지원 비용 증가로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두산중공업 차입금은 2010년 2조원에서 2019년 4조9천억원으로 2배 넘게 불어났다. ‘빚의 질’이 나빠졌다. 만기 1년 단기 차입금이 만기 1년 이상 장기 차입금보다 6배나 많아졌다. 회사 신용등급이 내려가면서 돈을 장기간 빌려주려는 투자자가 줄어 빚 상환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다. 2010년 1조원에도 못 미친 두산중공업의 국책은행 차입금은 최근 3조원까지 늘었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정부 돈줄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다.

탈원전 정책은 두산중공업 부실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만 현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 계획한 신한울원전 3·4호기, 천지원전 1·2호기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했다면 회사의 적자 부담을 줄이는 데 일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두산중공업 적자를 반전시킬 수준은 아니다. 원전 1기당 사업비를 4조원으로 잡고 이 중 25~30%가 원자로와 터빈·발전기 등을 독점 공급하는 두산중공업 몫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보자. 원전 4기 신규 건설로 두산중공업이 올릴 수 있는 매출은 최대 4조8천억원이다. 원전 건설 기간이 10년이면 한 해에 4800억원 정도 추가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매출 20%가 순이익으로 남아도 지금 같은 대규모 적자가 흑자로 돌아서기엔 역부족이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두산중공업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기존 원전의 정비와 부품 공급 등을 담당할 국내 기업이 두산중공업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전력 공급에 두산중공업은 필수적인 회사다. 채권단인 국책은행이 두산그룹에 두산건설 매각을 촉구하는 것도 두산중공업에 닥칠 수 있는 추가 부실 위험을 줄이려는 취지다. 그동안 두산그룹 계열사 지원에 총대를 멨던 맏형 두산중공업과 다른 회사 간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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