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ㅣ 사회부장
“원전 정책의 당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책 집행과 감사 과정에서 공무원 등의 형사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월성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대전지검이 지난 16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이다. 여권에서 원전 수사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부정하는 ‘정치적 수사’라는 비난이 빗발치는 것에 대한 반박이다. 여권 인사들은 야권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지검을 방문한 지 1주일 만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진 사실 등을 들어 원전 수사에 정치색을 입히기에 바쁘다. 검찰은 이를 단호히 배격한다. 탈원전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질 의도는 전혀 없기 때문에 정치적 억측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범죄 성립 개연성이 있다”(최재형 감사원장)며 수사 참고 자료로 넘긴 ‘공문서 훼손’과 ‘경제성 평가 조작’ 여부를 수사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원전 수사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는 수사결과는 친원전 세력이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는 좋은 소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 수사가 검찰의 희망(?)대로 진행되려면 넘어야 할 벽이 적지 않다. 우선 2017년 2월7일 선고된 판결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월성1호기 수명 연장 허가를 무효화해 달라며 지역 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다. 월성1호기는 앞서 박근혜 정부 때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 다음으로 오래된 원전이다. 1982년에 가동을 시작해 설계수명(30년)이 다한 2012년 11월 가동이 중단됐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2015년 2월에 수명을 2022년까지(10년) 연장해 그해 6월 다시 가동됐다. 대대적인 설비교체를 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재가동 뒤 두 달 만에 자동정지하는 등 1년 동안 두 차례나 운전이 중단돼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서울행정법원은 원안위가 이처럼 불안한 원전의 안전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수명을 연장했다고 판단했다. 안전성은 원전을 지을 때의 기술이 아닌 최신 기술을 적용해 평가해야 하지만 원안위는 이를 무시했다. 법원은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수명을 연장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해 수명 연장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원안위의 항소로 시작된 2심은 각하 판결이 내려졌다. 문재인 정부가 월성1호기 영구폐쇄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소송의 실익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원전 수명 연장이 불법이라는 1심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 불법적으로 수명이 연장된 원전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는지 수사하는 것은 논란이 불가피하다.
특히 이 소송은 원전 인근 지역 주민 2167명이 원고로 나서 2천여만원의 소송비를 모아 진행됐다. 앞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원전의 안전성 신화에서 깨어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2016년에는 원전 인근의 경주에서 규모 5.8의 큰 지진이 일어나, 원전 밀집 지역이 지진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탈원전이 불가피하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뒷받침된 소송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는 이런 국민적 공감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의 안전은 단순히 경제성만으로 따질 수 없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를 들어 이런 비난이 부당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재심 청구 의사를 일찌감치 밝히는 등 감사를 둘러싼 논란이 거센 상태에서 강제수사에 나섰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이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은 유죄 입증이다. 검찰은 원전 폐쇄 결정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해 이들의 직권남용 혐의를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직권남용은 재판에서 유죄 입증이 쉽지 않다. 최근의 사법농단 재판에서조차 줄줄이 무죄가 선고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원전 수사가 재판에서 유죄 입증에 실패한다면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다. 원전은 미래 세대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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