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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쌍용차에 주는 기회

등록 2020-01-16 17:55수정 2020-01-17 02:36

김혜진 ㅣ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거리에서 10년을 넘게 싸운 콜텍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자'고 구호를 외칠 때 나는 ‘어두컴컴하고 먼지 날리는 일터가 뭐가 좋아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짓궂게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이 만들던 기타를 자랑하는 노동자를 보며, 이들은 정말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구나 생각했었다. 파업을 하는 한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청소 도구를 자랑하기도 했고, 지저분한 학교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짓기도 했다. 자신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이 하나둘씩 죽음에 이를 때, 정리해고의 ‘부당함'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이들을 할퀴었다고만 생각했다. 일터에서 밀려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상처라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2013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시민들이 보내준 2만개의 부품을 직접 조립하여 코란도를 만드는 ‘H-20000'이라는 프로젝트를 했다. 그때 이들의 얼굴에는 ‘내가 자동차는 좀 알지' 하는 약간의 으쓱함과 기쁨이 가득했다. 그날 나는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정말로 절실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쌍용자동차에 마지막 남은 복직 대기자 46명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8년 9월21일 사회적 합의에서는 해고자 60%를 2018년 말에 복직시키고, 그 외에는 2019년 상반기에 복직을 시키되 6개월간 무급휴직을 하고, 2019년 말에 부서 배치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12월24일, 회사는 남아 있는 46명의 노동자에게 무기한 휴직을 통보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통상임금의 70%를 주겠지만 부서 배치는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노동자들은 쌍용자동차가 업무를 시작하는 1월7일부터 출근투쟁을 하고 있다.

이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쉽게 말한다. 일을 하지 않고 임금을 70% 받으니 좋은 것 아니냐, 회사가 어려우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왜 무기한 휴직 통보를 받고 누군가 밧줄을 들고 산을 올랐는지, 왜 휴직 연장을 통보받은 86.1%의 노동자가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지, 왜 91.7%의 노동자가 현재의 삶이 불안정하다고 느끼는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왜 받는지, “심한 충격을 넘어 외부 출입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1월12일 쌍용자동차 복직 대기자 설문조사 결과) 알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노동을 통해 동료들과 협동하고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낀다. 그런데 기업들은 노동자를 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으로만 여긴다. 조금만 위기다 싶으면 정리해고를 선택한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복사용지나 기계 부품처럼 의미 없이 팽개쳐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처 입고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정리해고는 폭력이다.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런 무기력을 떨치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설레던 순간에 쌍용자동차는 이 노동자들을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복직은 ‘사회적 합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해고자들의 복직을 응원한 것은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만 떠넘기는 정리해고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리해고를 하고자 회계조작까지 했던 쌍용자동차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정부도 지원을 약속했고, 시민들도 쌍용차를 적극 구매했다. 그런데 회사는 위기를 핑계로 약속을 어겼다. 46명을 무기한 휴직시키고 70%만 임금을 준다고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지금까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해고자들에게 다시 한번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요구한다. 쌍용자동차는 사회적 합의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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