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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10년 기다려도 기약없는 복직…쌍용차 해고자들 “이젠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등록 2019-12-29 21:03수정 2019-12-30 02:09

[심리센터 ‘와락’에 모인 ‘무기한 휴직’ 쌍용차 해고자 22명]
사쪽-기업 노조 합의문 받고
정신적 충격에 ‘망연자실’

“먼저 복귀한 동료들이 연락해서
임금 70% 받아 다행 아니냐고 해
본질은 돈이 아니라 업무 복귀…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뿐”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로 공장에서 쫓겨났다가 지난해 노노사정(쌍용차 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에 따라 내년 1월2일 복직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무기한 휴직’ 통보를 받은 쌍용자동차 복직 예정자 이정근(오른쪽 둘째)씨 등이 29일 오후 경기 평택시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참석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평택/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로 공장에서 쫓겨났다가 지난해 노노사정(쌍용차 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에 따라 내년 1월2일 복직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무기한 휴직’ 통보를 받은 쌍용자동차 복직 예정자 이정근(오른쪽 둘째)씨 등이 29일 오후 경기 평택시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참석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평택/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하나 있는 아들이 이제야 효도할 때가 됐다 싶어 시내 나가서 부모님 입에 고기쌈 넣어드리는데, 그때 딱 연락받았어요. 차마 부모님께 ‘(복귀가) 무기한 연장됐습니다’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고요. 이젠 진짜 제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1월2일 복귀 예정이었던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서현문씨)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에 있는 심리치유센터 ‘와락’. 출입문 앞 거실에는 검은 글씨로 “기한 없는 휴직. 현장 순환휴직의 시작” “해도 해도 너무한다! 즉각 부서 배치”를 반듯하게 쓴 하얀색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이날 이곳에선 10년7개월 만의 출근을 일주일여 앞두고 지난 24일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를 받은 쌍용차 무급휴직자 22명이 모여 그동안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정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최근까지 큰 문제 없이 조합원들과 연락했는데, 이번 발표 때문에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가 말하는 ‘문제’는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10년간 30명의 동료가 생활고와 트라우마 등으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일을 말한다. 이날 모임은 통보를 받은 무급휴직자들이 정신적 충격과 아픔을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다.

인천 백령도와 전북 장수 등 전국에서 모인 조합원들은 24일 쌍용차와 기업노조의 ‘합의’ 내용을 통보받은 뒤 생긴 고민과 걱정에 한숨 쉬었다. 지난 7월1일 재입사가 결정된 뒤 정규직 일자리를 관뒀다는 조합원 ㄱ씨는 “6월에 사표를 내고 (복직을 기다리며) 일용직 생활을 전전했는데, 소식을 듣고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당장 집에 다달이 나가는 돈이 있는데, 이 상황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ㄴ씨 역시 “먼저 복귀한 일부 동료가 ‘그래도 통상임금의 70%를 받으니 다행 아니냐’고 연락이 오는데, 돈이 본질이 아니다. 업무 복귀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답답한 것”이라고 심란한 마음을 드러냈다. 쌍용차 쪽은 이들에게 무기한 휴직 기간에 임금의 70%를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0년 동안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는 걸 수차례 경험한 만큼 “담담했다”는 이도 있었다. 복귀를 앞두고 가족들과 생애 첫 외국여행을 떠났다가 문자로 소식을 접했다는 ㄷ씨는 “2015년 이후 복직이 연기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상상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담담했다”며 “아내와 아이들도 이런 과정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이젠 무뎌진 것 같다”고 무력감을 내비쳤다.

이들보다 앞서 공장에 복귀한 김선동 쌍용차지부 현장위원회 의장은 “지금 쌍용차의 태도를 보면,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직전 대주주였던 상하이자동차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공장 안에 있는 복직자들이 회사와 기업노조를 상대로 함께 싸울 것인 만큼 동료들이 과거보다 외롭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연대’의 뜻을 전했다.

쌍용차지부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사무실에서 지난해 9월 ‘해고자 119명 복직’에 합의한 노·노·사(쌍용차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및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모여 합의 이행을 위한 실무교섭을 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같은 날 오후에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쪽의 휴직 통보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특정노조 조합원만 휴직연장 선정 논란

47명 모두 민주노총 지부 소속
대법, 유사한 정리해고 사례 관련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
회사 “기업노조와 합의…절차 정당”

다음달 현장 복귀 예정이었으나 지난 24일 쌍용차와 기업노조 간 합의로 또다시 ‘무기한 휴직’ 통보를 받은 쌍용차 무급휴직자 47명은 지난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이다. 기업노조가 이 47명만 꼽아 회사 쪽과 무기한 휴직을 합의한 데는 이들이 소수 노조 조합원인 점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노조의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한 정리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관련 판례를 보면, 법원은 회사가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휴직자를 선정할 때 △경영상 필요성 △대상자의 경제상 불이익 △선정의 합리성·공정성 △노조와의 협의 절차 등 4가지 요건을 고려했는지를 종합해 선정의 유효성을 따진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7두10440 판결)

쌍용차 쪽은 자동차 시장의 어려움과 기업노조와의 합의를 근거로 47명의 무기한 휴직 연장이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이 ‘유니언숍’(입사와 함께 노조에 자동 가입되도록 하는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지난 7월 재입사 때 기업노조에 가입된 만큼 당사자의 개별 동의가 없어도 노사 합의를 통한 재휴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재입사를 하면서 양쪽 노조에 이중 가입됐지만, 이 47명은 그동안 금속노조에만 조합비를 내왔고, 기업노조는 내년 1월25일부터 조합비를 받겠다고 공문을 보내왔다”며 “회사가 어렵다는 데 공감하지만, 쌍용차 구성원 전체가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47명만 따로 떼 무기한 휴직을 통보하는 건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2017년 대법원은 복수 노조 상황에서 특정 노조의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한 정리해고를 ‘노조 간 차별’로 인정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장석우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정리해고 과정에서 회사의 일부 부서를 폐지하는 경우에도 특정 부서 전원을 해고 대상자로 선정할 순 없게 돼 있다”며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징계, 업무평가 등의 기준 없이 복귀가 예정된 47명 전원을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선정 기준 자체가 자의적이다”라고 말했다. 

평택/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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