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최영해 칼럼의 배후

등록 2013-09-23 18:37수정 2013-12-16 16:10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왜 <동아일보>는 사과든 해명이든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는 것일까. 맞다. 한국 신문 사상 최고의 문제작이 될 거라는 평가를 받은 동아일보 논설위원 최영해의 ‘채동욱 아버지 전 상서’라는 바로 그 칼럼에 관한 궁금증이다. 글쓴이의 표현대로라면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온 아이의 입장에서 쓴 창작물’에 대해선 시민이나 관련 전문가나 한목소리다.

세상에 변태도 이런 변태가 없다고 분노하기도 하고, 동아일보가 문학지로 변신하여 활로를 찾는 모양이라고 혀를 차기도 한다. 동시대 모든 언론인들에 대한 테러라는 동업자들의 한탄이 이어지고, 이런 수준 이하의 글을 칼럼이랍시고 올리는 데스크도 기막히다는 독자의 총평까지 끝이 없다. 심지어 악마를 보았다는 살풍경한 소감까지 등장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누구도 알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감정과 생각을 추측하여 공적 여론의 장에 내어놓은 것은 아이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폭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분노와 질타가 우박처럼 쏟아지는데도 해당 필자와 동아일보는 꿈쩍도 하지 않는 눈치다. 설마 폭풍처럼 인구에 회자된다고 즐거워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사과의 시기나 방법을 조율 중이라는 징후도 없다. 애초에 사과나 해명이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글은 실수라고 하기 어렵다. 문장 몇 줄이 아니라 설정 자체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11살 아이의 인권을 난도질한, 총체적으로 비윤리적인 글이다. 더 전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용도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글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버젓이 메이저 신문에 실렸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예전 어떤 신문의 논설위원처럼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 글을 꼭 싣기 위해 원고를 담당 직원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후일담도 없다. 그렇다면 그 칼럼의 배후는 특정 집단에서 집단적으로 어떤 의식이 무뎌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정신의학적으로는 감정의 마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감정마비는 극도의 분노나 무기력, 우울이나 불안 등의 감정보다 더 심각한 정신병리다. 일종의 감정적 말기암 같은 것이다. 자기 욕망이나 이해관계의 틀 안에서만 판단하고 행동한다. 감정적 불편함이 전혀 없다.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도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도 물론 없다. 대상이 누구이든 가리지 않는다. 무차별적이다. 옆에서 보기엔 소름이 끼쳐도 정작 본인들은 무덤덤하다. 왜 난리들이지? 정도의 의아한 느낌이 전부다. 그래서 힘 가진 집단의 감정마비는 재앙에 가깝다. 피해자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나 나치즘의 광기는 어떤 측면에선 그런 집단적 감정마비에 의한 결과다.

문제의 칼럼이 인권침해를 스스로 방어하기에 무력한 아동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폭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 글을 편집국과 주변 사람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것은 기이하다. 정상적인 마음을 가졌다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인간의 감정 반응들이 집단 내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은 듯 보인다. 자신들의 행동으로 초래될 남의 고통이나 불행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적 불편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직업적 이유이든 시장 경쟁에서의 생존전략이든 언론이라는 권력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이런 집단적 감정마비 현상이 내재화되면 그에서 비롯하는 결과는 언제나 참혹하다. 비단 동아일보에 국한된 문제라고 하기엔 우리의 언론 현실이 전반적으로 너무 착잡하다. 이번 칼럼은 언론집단의 감정마비 증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 배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으면 결국엔 광기의 사회로 폭주하게 된다. 언론이 확실한 머리칸의 역할을 하며.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명태균 게이 1.

[사설] ‘명태균 게이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2.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북-러 결탁 전, 러시아는 윤석열에게 경고했었다 [논썰] 3.

북-러 결탁 전, 러시아는 윤석열에게 경고했었다 [논썰]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4.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국민이다 5.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국민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