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칼럼]
떠나지 못했던 그들은 떠났다. 피붙이와 등 비비며 살기 위한 한 뼘 공간을 찾아 떠돌던 인생, 살아서는 철거(청소)의 대상이었고, 죽어선 냉동고에 갇힌 신세. 속히 이 비정한 땅을 벗어나려 했겠지만, 이 무정한 세상은 355일 동안 그들을 잡아놓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들이 떠났다고 화염 속에 터져나온 저 외마디 절규마저 사라질 순 없다. “저기 사람이 있다!” 한국판 작은 아우슈비츠, 광기와 폭력의 지옥, 양심과 이성의 무덤이었던 남일당이 잊혀질 순 없다. 그들이 불탈 때 생명의 존엄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도 불탔고, 양심도 정의도 불탔고, 신은 십자가에 달렸다. 그런 남일당은 자본과 권력의 복합체가 시민에게 노예적 굴종을 억박하는 주술이었다. 남일당이 더욱 절망스러웠던 것은 우리 안의 거룩한 속성과 가치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은 인간 내면의 선의와 양심과 도덕률로써 그 존재의 표지를 삼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목전의 살인 방화에서 눈을 돌렸다. 난자당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닫았다. 그 앞에서 거룩한 속성은 말소됐고 영혼은 죽었다. 그저 욕망으로 일그러진 괴물만 남았다. 그 괴물의 속성은 무관심과 무감각 그리고 냉정과 비정 사이. 그러나 그곳은 비정한 이들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지만, 마음이 가난하고, 깨어 있는 이들에겐 정토였다. 낮고 천하지만, 우리를 정화하고 거룩한 것을 되살리는 성소였다. 세상에서 사라진 천사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전국에서 날아온, 보잘것없는 씨앗은 그곳에서 싹을 틔웠다. 풀잎 하나하나엔 천사가 있어, 이들의 사랑과 헌신에 평화의 물을 주었다. ‘잘 자라라, 잘 자라라.’ 그늘진 곳만 찾아가는 홀씨는 참사 직후부터 날아들었다. 그곳에서 욕망에 짓눌려 질식 상태에 있던 사람의 말을 되살려 전하기 시작했고, 그곳을 둘러친 펜스에 꽃을 피우고, 나비와 새가 날게 했다. 절망의 눈물 속에서 희망의 노래를 이끌어냈고, 분노의 떨림에 연대와 헌신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해원의 길을 텄고 상생의 염원을 풀어냈다. 100일째 되던 날, 문정현 신부는 제단을 쌓아올렸고, 뒤따른 이들은 그곳에 위로와 용기를 나누는, 그들 모두를 거룩하게 하는 성소를 세웠다. 이들로 말미암아, 남일당은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공동체, 슬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답고 따듯한 마을로 되살아났다. 시인은 사람의 말을 길어내고, 미술인은 사람의 꿈을 그려내는 문화예술 창작소가 되었다. 그래서 단 하루도 음악회, 전시회, 연극, 무용이 그치지 않았고, 하루도 성찰과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내 안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성찰하고, 선의와 헌신, 정의와 평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 등을 일깨웠다. 내 영혼의 죽음에 이르는 병, 무감각과 무관심을 치유했다. 그곳에서 연대와 희망은 거듭났다.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눈먼 자본과 권력의 광기는 지금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을 삶의 벼랑 끝, 망루로 내몬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남긴 저 야만과 폭력의 상징, 남일당을 남김없이 지워버릴 것이다. 우리의 천사들이 이룬 기적의 기억도 없애려 할 것이다. 그 위에 돈과 성공의 바벨탑을 쌓아, 욕망을 더 자극하고, 남일당의 비극을 희화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조롱하려 한다. 그렇다고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남일당 천사들이 꽃피운 헌신과 사랑을, 그들이 이룬 희망을, 그들이 행한 치유의 기적을 지울 순 없다. 그건 꽃피우지 못하지만 세상 구석구석 날아가는 저 홀씨처럼 가난하고 어둔 골목 구석구석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 천사들은 지금 이렇게 말한다. ‘더는 흩어지지 말아라. 손 꼭 잡고 등 비비며 살아라.’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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