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용산은 묻습니다, 누가 우리 이웃인지”

등록 2010-01-10 19:21

열달간 용산 지킨 문정현 신부
유가족·철거민들과 함께 미사
“이렇게 절절히 아픈 우리사회
같이 아파하고 해결해야 희망”
“진상규명 등 아직도 할 일이 남았고, 역시 그때도 함께 하렵니다.”

문정현(70) 신부는 10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집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노구를 이끌고 지난해 3월 말 “미사 보따리”와 함께 용산참사 현장에 눌러 앉은 지 거의 10달만이다. 전날인 9일 치러진 ‘용산참사 장례식’에서 정치인들이 앞장설 때, 문 신부는 “너무 억울해서 아무 할 말도 없다”며 가만히 뒤쪽에서 유가족 곁을 지켰다.

문 신부에겐 ‘남일당’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는 용산이 “숨을 쉴 수 없는 공간”이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집회를 하려고 하면 경찰이 막아서고, 펼침막 하나 거는 것까지 경찰이 와서 뜯어갔지. 미사 때 사람들이 가져온 화분 올려놓는 받침대까지 가져갔으니까. 대화도 거부하고, 집회도 불허하고, 솥두껑 덮듯 이곳을 덮었던 거야.”

문 신부가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틈은 미사뿐이었다. “경찰의 방해 없이 유가족과 철거민, 그리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고 함께 기도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순간이었지. 그런 미사 때문에 내가 이곳에 있었고, 미사 때문에 내가 버틸 수 있었어.”

그러나 미사가 끝난 뒤, 세상이 외면하는 용산에 홀로 있으면 그 외소함과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 마다 ‘견디자, 당할 만큼 당하자, 감옥에 가야 하면 가자’고 마음을 추스르며 유족·철거민들과 함께했다.

앞서 문 신부는 지난해 1월 용산참사가 일어난 뒤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을 여러 차례 들렀다. 그러다 결국 현장에 눌러 앉은 것이다. 집에는 계절이 바뀌면 입을 옷을 가지러 3~4차례 밖에 가지 못했다. 1970년대 반독재 투쟁, 80년대 노동·농민운동, 90년대 통일운동, 2000년대 초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운동까지 평생을 ‘거리의 신부’로 살았다. 그런데 2009년 용산은 그를 불러냈고, 그는 그 ‘부름’에 답했다.

문 신부는 지금도 물음표를 갖고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몰려들던 그 숱한 사람들은 왜 용산을 비켜갔을까? “신드롬이 일 정도로 추모 열기가 대단했었는데, 이곳은 그냥 비켜갔어. 회의감이 들었어.” 그래서 그는 용산에 무심했던 우리 모두 역시 용산참사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자기 몸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고 고치려고 하는데 ‘용산’이, 우리 사회가 이렇게 아픈데도 아무도 이 아픔을 치유하려고 하지 않았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일이기에 같이 통탄하고, 아파하고, 해결을 노력해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지. 이 사회가 얼마나 냉정하기에 1년 다 되도록 시신을 냉동고에 넣어놓고, 장례를 치르지 못했나.”

루카복음 10장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나온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 상태가 된 사람을 사제도, 레위인도 모두 지나쳤지만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만은 돌봐줬다. 이 이야기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이었다. 문 신부는 이 말을 꺼내며 “이 절절한 용산참사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가. 용산은 우리에게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1.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2.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윤 ‘구속 연장 재신청’ 당직법관이 심사…검찰 “보완수사 가능” 3.

윤 ‘구속 연장 재신청’ 당직법관이 심사…검찰 “보완수사 가능”

“황당 윤석열·김용현 추종 극우에 불안”…다시 광화문 모인 깃발들 4.

“황당 윤석열·김용현 추종 극우에 불안”…다시 광화문 모인 깃발들

귀국한 전광훈 “체포하려면 한번 해봐라…특임전도사 잘 몰라” 5.

귀국한 전광훈 “체포하려면 한번 해봐라…특임전도사 잘 몰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