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위에도, 유족과 시민들 머리 위에도 이들의 아픔을 덮으려는 듯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참사 355일 만에 열린 ‘용산참사 장례식’을 마친 유족과 시민 3000여명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노제를 열고 있다. 철거민 희생자 다섯 명은 이날 저녁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용산참사 355일만에 범국민장 치르던 날
날리는 눈발속 시민 3000여명 함께 배웅
유족들 국민에 감사 “명예회복 도와달라”
날리는 눈발속 시민 3000여명 함께 배웅
유족들 국민에 감사 “명예회복 도와달라”
355일 동안 차가운 영안실 냉동고 안에 잠들어 있던 남편과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날, 하염없이 우는 가족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하얀 눈이 내렸다.
1년 전 그날과 같은 추위 속에 ‘용산참사’로 숨진 다섯 명은 지난 9일 나란히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이날 낮 12시30분께부터 서울역에서 치러진 영결식과 오후 5시15분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노제엔 3000명(경찰 추산 2500명) 넘는 시민들이 모여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서울역광장은 주최 쪽이 마련한 의자 1200여개로도 모자라, 계단과 통로까지 인파가 가득 찼다. 시민들까지 참여한 장례위원회 위원만 8556명을 헤아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비롯한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등 용산참사 현장을 지켜온 종교인들, 노동·사회단체 등은 물론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도 공동장례위원으로 참석했다.
해를 넘겨서야 치러진 영결식에서 시민들은 한결같이 ‘마음의 빚’을 이야기했다. 동아리 회원 4명과 함께 영결식에 참석한 정성윤(23·고려대)씨는 “신부님들처럼 1년 동안 자리를 지킨 사람들도 있는데,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왔다”고 말했다. 8살 난 딸과 10살 조카의 손을 잡고 나온 김영신(41·직장인)씨도 “참사 현장에 한번도 가보질 못해 미안한 마음에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해 나왔다”고 했다.
경기 과천시 과천동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이춘숙씨는 그곳 주민 여럿과 함께 영결식장을 찾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컵라면과 커피 등을 나눠줬다. “우리도 3년 만에 겨우 주소를 얻었거든요.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보면, 우리의 미래가 저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날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한 배은심(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용산 가족들을 볼 때마다 20년 전 내 모습 같다. 당신들의 일이 내 일이요, 내 일이 당신들의 일”이라며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유족을 대표해 감사인사에 나선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과분한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면서도, 목이 쉬어버려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정유경 김민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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