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파국 속에 있는 서민들은 ‘서로 돌봄을 통해 아파도 괜찮은 사회 만들기’라는 오래된 연대의 꿈을 접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귀뚜라미가 울 땐 24도래. 안단다. 지들도.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하지만 인간은, 권력자는 모른다.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 모습. 연합뉴스
신영전ㅣ한양대 의대 교수
모든 파국에는 징조가 있다. 기독교에선 종말의 징조로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또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했다.
한국의 의료체계도 파국이 도래했다. 지난 14일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현재대로라면 적립금이 5년 후 소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인당 경상의료비 연평균 상승률은 지난 10년간 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4%의 거의 2배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우리 의료보험 제도는 재원이 월급에서 나오는데 노동자 수는 해마다 급격히 줄고, 월급이 의료비 증가율을 따르지 못하니 파국은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재정 문제만이 아니다. 오이시디 평균 76.3%에 턱없이 모자라는 보장률(2021년 64.5%)은 최근 감소세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중증 환자들은 생계의 파탄이나 진료 포기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고, 의료비를 걱정하는 국민의 81.7%가 민간 보험에 가입해 비싼 보험료를 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상병수당이 없는 우리나라 국민은 코로나 감염을 숨긴 채 일해야 했다. 인색할 대로 인색한 방문 돌봄 지원 때문에 치매 부모를 일주일에 고작 30분씩 두 번밖에 면회가 안 되는 요양원으로 보낸 가족들은 양심의 가책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그런 혜택조차 받기 어려운 대부분의 보호자는 간병 피로와 우울에 시달리고, 간병 자살, 상해, 살인의 비극들을 낳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비극들에 가속도가 붙으리라는 것이다.
불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의료인들의 수도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달 열린 국제의료질관리학회에서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 교수는 현재 의사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30%는 낭비, 10%는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요소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이 수치에서 자유로울까?
지난해 12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파국은 불가피한 것일까? 30여년 전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을 배워간 대만은 우리보다 적은 보험료(5.17%, 한국은 7.09%)를 내면서도 보장률은 85%(한국 64.5%)에 달하고, 의료보험에 대한 국민 만족도가 80%를 넘었다니, 작금 한국 의료보험의 파국은 정부 정책의 실패인 셈이다.
진정한 파국은 수많은 징조에도 무감각한 순간에 온다. 지금의 파국 국면이 무서운 이유다. 이번 정부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의료안전망 위기의 도래를 눈앞에 두고도 보장성 확대, 재정안정화, 돌봄 확대, 간병과 의료인력 확보, 의료 취약지 문제 해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목표 수치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 연말까지 수립해야 하는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은 시행을 몇 달 안 남긴 현재까지, 공론화는커녕 비밀작전 펼치듯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부자 감세로 60조원 세수결손을 야기한 상황에서 획기적 보장성 강화안을 담기는커녕, 이면지로도 쓰기 어려운 졸속 안이 나올 듯하다. 한술 더 떠 이런 상황에서도 의료비 상승을 부채질할 영리화, 민영화 작업에 혈안이다.
왜 이럴까? 첫째, 이 정권 지도세력의 의지 부족과 편향 때문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공론장을 관제 언론으로 대치하고 컴컴한 지하 벙커 안에서 이념논쟁 전략만 짜고 있다. 둘째, 소득 불평등의 확대가 의료와 돌봄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전자에게 위기는 남의 일이다. 전화 한 통이면 원하는 대형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고, 간병인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들 속에 대통령,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의료, 돌봄 위기 등의 대응 방안을 만들기 위해 밤새워 대책 회의를 할 리 없다. 하지만 기억하라! 민초의 고통에 눈높이 하지 못하는 대통령, 정치인은 폭군이자 흉기일 뿐이다.
이미 파국 속에 있는 서민들은 비관, 체념, 나만이라도 살기, 제 가족 챙기기라는 두터운 자기만의 고치 안에 숨어들어 문을 굳게 닫았다. ‘서로 돌봄을 통해 아파도 괜찮은 사회 만들기’라는 오래된 연대의 꿈을 접었다. 이런 파국의 시간, 며칠 전 쓰레기 더미 속 네살배기를 남긴 엄마의 주검이 발견되었고, 이 시각에도 수많은 노인이 종일 젖은 기저귀를 찬 채 누워 있다. 좁은 방 안에서 외롭게 고독사를 맞이한 이의 수도 올 상반기에만 2658명을 넘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귀뚜라미가 울 땐 24도래. 안단다. 지들도.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하지만 인간은, 권력자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