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헌장 99조에 근거해 52년 만에 요청한 휴전 요청을 받아들이라! 지금 이 전쟁에 반대하고, 더 이상 무고한 어린이, 환자, 민간인들을 죽이지 말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이 전쟁의 가해자라는 말이다. 이 전쟁이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인 이유다.
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유니스 난민촌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당한 어린이를 대피시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도살장이었습니다.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말발굽으로 마구 짓밟아 버렸습니다. (물을 달라 애원하던 병사는) 이튿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입속에는 흙이 가득했고 꽉 쥔 양손의 손톱들은 땅을 파헤치느라 휘어져 있었습니다.”
앙리 뒤낭이 기록한 1859년 솔페리노 전투 현장의 모습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 비극의 성찰을 통해 부상 군인이나 민간인은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과 국제적십자사라는 조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2023년 오늘, 인류는 이 소중한 원칙들을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7일 현재 1만7천명이 넘게 사망했고 그중 70%가 여성·어린이라고 밝혔다. 현장을 방문한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 글로벌 대변인은 병원 내부는 피와 피 묻은 붕대가 바닥을 덮고 있고, 곧 숨을 거둘 아이들을 안고 어머니들이 울부짖고 있는 그곳은 온통 죽음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많은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직원들이 사망하고 이스라엘군이 끝내 알시파 병원을 공격하자, 분노에 차 “병원은 전쟁터가 아니다”라고 소리쳤다.
미국 시엔엔(CNN)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바닷물을 넣어 지하 공간에 있는 하마스군을 수장시킬 계획과 함께 쿠란에 나오는 노아 시대 대홍수 당시 경고의 글, “그들이 계속 잘못을 저질렀고, 홍수가 그들을 덮쳤다”라는 구절이 담긴 전단을 살포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이 그 전단을 읽는다면 “나의 이름으로 살인하지 말라!” 할 것이다.
이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헌장 99조에 근거해 52년 만에 요청한 휴전 요청을 받아들이라! 또한 우리는 이 폐허 위에 인류의 심판대를 세워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민간인을 인질로 삼은 행위에 대한 심판과 함께 240여명이 인질이 되었다는 이유로 대부분이 민간인인 1만7천여명을 죽인 것이 정당한지 물어야 한다. 병원 안에 하마스군이 있다고 해도, 중환자실의 전기가 끊겨야 했는지, 병원, 피란민 쉼터, 인도주의 구호 활동 지역까지 공격해야 했는지 물어야 한다. 죽음을 직감한 소나무가 눈물을 밀어 올려 솔방울 수를 늘리듯, 무고한 1명의 어린이가 숨질 때마다 가슴에 분노를 품은 100명의 하마스가 태어난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모든 비극에는 배후가 있다. 비극 앞에 환호하고 있는 무기산업 기업, 그들과 결탁한 권력자들이다. 2일치 한겨레 보도(
고삐 풀린 글로벌 군비 통제)에 따르면, 지난해 인류가 쓴 군사비의 총액은 2,900,000,000,000,000원(2900조원)이다. 단연 1위는 미국(8770억달러), 2위가 중국(2920억달러)이다. 우리나라도 646억달러를 지출해 일본을 제치고 9위를 차지했고, 이른바 ‘케이(K)-방산’이라 불리는 무기 수출 시장 점유율도 2017년 12위에서 2021년 8위로 올라섰다.
첨단 살상 무기의 사용도 증가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불이 붙으면 2700℃ 고열로 인체에 달라붙어 살과 뼈를 태워버리는 백린탄과 함께 각종 신형 무기를 가자에서 시험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도 양쪽 모두 국제인도법이 금지하는 집속탄을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집속탄의 공급처는 미국이다.
어린이들의 주검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현장에서 제임스 엘더 대변인은 행동하지 않는 것은 이 살인을 허용하는 것이고,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이 전쟁에 반대하고, 더 이상 무고한 어린이, 환자, 민간인들을 죽이지 말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이 전쟁의 가해자라는 말이다. 이 전쟁이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인 이유다.
솔페리노 전투의 비극을 전세계에 알렸던, 그 사내는 1910년 10월30일, 차가운 요양원 골방에서 외롭게 숨을 거뒀다. 지금의 비극을 예견했을까? 그의 마지막 말은 “인류애는 어디로 갔는가?”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선 시체 더미 속 부상병들의 신음이 가득했던 곳에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난 마을 여인들이 외쳤던 말, “소노 투티 프라텔리!”(우리 모두는 형제다)란 외침이 천사들의 합창처럼 들려왔을 것이다. 그 노래를 배경으로, 하얀 손수건 위에 각혈한 듯, 자신의 붉은 심장을 꺼내 놓은 듯한 적십자 깃발이 휘날렸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한 시인은 노래했다. “우리의 미래는 오늘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달렸다.” 인류의 종말로 치닫는 듯 을씨년스러운 한 해의 마지막 달, 오늘 우리는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