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서 공공운수노조와 민영화 저지! 공공성 확대! 시민사회 공동행동 주최로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공성 FESTA’ 둘쨋날 행사가 열려 시민들이 각 부스에서 마련한 체험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근 윤석열 정부가 짠 2024년 예산안이 발표됐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긴축’이다. 기획재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흔들림 없이 견지”하며 “강도 높은 재정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했지만, 정작 조르고 있는 것은 국민의 숨통이다. 민생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사회보험도 비껴가지 않았다. 노동자가 실직 기간에 받는 구직급여는 2695억원, 10인 미만 저임금 노동자 등에게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예산은 2389억원 삭감됐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보험을 나라 살림 거덜 낼 시한폭탄쯤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취임 초기부터 윤 대통령은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재정을 파탄시킨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연금 역시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하는 제도라며 지금 당장에라도 개편에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 국정과제인 3대 개혁 중 하나로 연금을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보수언론이나 전문가들도 ‘위기’, ‘파산’, ‘시한부’, ‘줄도산’, 그리고 ‘국가부도’라는 자극적인 단어까지 동원하며 개악을 부채질하고 있다. 악의적인 왜곡이나 의도적인 편 가르기 선동으로 혐오와 차별,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외국인 의료쇼핑으로 줄줄 새는 건강보험 먹튀와 무임승차를 막아야 한다는 국민의힘 대표의 주장은 젊은 청년이나 여성이 ‘시럽급여’로 해외여행 가고 샤넬선글라스나 옷을 사며 즐긴다는 망언과 맞닿아 있다.
사회보험과 민간보험은 반비례 관계다. 사회보험에 대한 재정 건전성 강화 요구는 보장성 축소로 이어지고, 민간보험 활성화와 연결된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3977만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2022년 3월 기준). 자동차보험 가입자(2423만 명) 보다 훨씬 많다. 15개 실손보험 판매회사의 보험료 수익은 전년 대비 10.4%나 증가한 11조6447억원이다(금융감독원, 21년 기준). 실손보험의 증가와 90%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구조가 재정 낭비의 주범이건만, 여전히 64.5%로 취약하기만 한 보장성 탓을 하고 있다. 게다가 민간의료기관 공공의료 수가 신설, 비대면 진료 시행, 민간보험사의 건강지원서비스 활성화 등 민간의료를 지원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도 낮다. 300만원 소득자가 2023년부터 20년 가입해도 예상연금액은 약 59만1600원에 불과하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생계급여(1인 62만3368원)보다 낮다. 그런데도 이번 5차 재정계산위원회는 소득대체율 상향은 빼고,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안만 제시했다. 불안한 노후소득의 빈틈으로 사적연금 시장규모는 약 664조원(21년 기준)까지 쌓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사적연금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올해 사적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했다. 약 983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은 99.9%가 금융부문에 투자되고 있고, 민간 자산운용사에게 위탁해 지급한 수수료만 2021년 한해 2조3천억원이나 된다.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다. 연금은 노후가 더는 ‘죽음의 대기실’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사는 데 디딤돌이 돼 주고, 건강보험은 ‘병보다 더 무서운 병원비’의 공포를 덜어준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도 일하다가 다치고 죽거나, 또는 일자리를 잃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 현재 사회보험이 직면한 위기는 재정이 아니라, 제도 본래의 목적과 취지대로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못 하고, 배제되는 이들을 방치하는 탓이다. 정부는 사회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와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한 사회보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책임과 정부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성의 역행’ 기획은 한겨레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