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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건강보험 있어 버티는데…“혈세 낭비“ 비난에 심장이 ‘쿵’

등록 2023-07-29 09:00수정 2023-07-29 21:59

[한겨레S] 소소의 간병일기 치료비 부담

엄마 암 발병 뒤 건보 혜택 실감
윤 대통령, 보장 강화 정책 비판
중증환자 비용 ‘병원비+알파’
비급여 항암치료 부담도 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합니다.”

지난해 12월13일, 기사를 읽으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국민 혈세’ ‘낭비’ ‘재정 파탄’ ‘희생 강요’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고 이내 가슴에 박혔다. 나와 내 가족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재정을 파탄 내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건가. 그가 내뱉는 비난의 화살이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다.

불과 몇달 전 상황이었다면, 윤 대통령의 발언을 그리 집중해서 읽진 않았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전 정권과 각 세우는 것’이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 가계를 파탄 낸다는 그 암이다.

암 간병하며 “건보 만세”

윤 대통령이 ‘건강보험의 폐해’에 대해 말하던 그날, 엄마는 진료비로 2만6211원을 계산했다. 총진료비 50만4848원 중에서 약품비 37만4365원, 검사료 5만212원, 진찰료 2만3521원 등 47만8637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했다. 뼈주사, 항암제 등을 맞은 어떤 날은 진료비 영수증에 240만514원이 찍혔지만, 우리가 낸 금액은 12만997원뿐이었다. 지난해 4월, 엄마가 쓰는 항암 약제들이 급여권에 진입한 덕이었다.

당시 나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건보 찬사’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만나는 이들에게 “건강보험 혜택 덕분에 숨통이 트인다. 월급에서 건보료가 빠질 때마다 아깝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병원 갈 일이 1년에 한두번 정도였던 터라 혜택을 받을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환자가 생기고서야 ‘건보 만세’를 외치게 된 것이다.

엄마는 악착같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좀처럼 당신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 드물었고, 어쩌다 한번 옷을 살 땐 백화점이 아닌 시장을 찾았다. 명절이나 본인 생일 땐 채무자한테 돈 받듯 우리에게 “용돈 없냐”고 물었다. “그렇게 돈 모아서 뭐 하게”라고 물으면 엄마는 “늙어서 너희한테 신세 안 지려고”라고 말했다. 그렇게 쌓인 엄마의 통장 속 잔고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은 모두 엄마의 병원비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거칠게 세운 자금 계획은 이랬다. 병원비는 엄마 계좌에서, 부수적으로 드는 비용은 4남매가 나눠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은 건 동생들과 ‘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을 돌보는 숭고한 가치에 ‘비용’이라는 현실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구차하고, 비참하고, 어쩌면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애써 숫자를 따지려 들지 않았다. 아니, 실은 따지지 않는 ‘척’했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기 직전, 엄마는 입원한 ㄱ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과 펫시티를 촬영했다. ㄱ병원은 추가로 골수검사를 한 뒤 결과를 봐야만 암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골수검사를 한 뒤 암 진단을 받으면, 진료비의 0~10%만 환자가 부담하면 되는 중증질환자 산정 특례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병원에서 암 진단까지 받으면 그 전에 지출했던 검사 비용도 본인부담금을 제외하고 환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 골수검사를 받으면, ㄱ병원에서 진행했던 검사는 ‘병명 진단’을 위한 검사로 여겨져 산정 특례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병원을 옮기지 않고 골수검사까지 받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문제가 생겼다. ㄱ병원은 골수로 검사하는 범위가 다른 병원보다 협소했다. 또 골수를 채취하는 숙련도가 떨어져 환자가 많이 아프다는 내용의 블로그 글도 마음에 걸렸다. 병원을 옮기면 ㄱ병원에서 낸 엠알아이 82만9000원, 펫시티 검사비와 5일 입원비 127만8470원, 혈액검사비 22만200원 등을 환급받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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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구애받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라 망설였지만, 결국 나는 다른 병원에서 골수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와 동생들은 “돈보다 엄마가 덜 아픈 게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렇게 결정한 스스로를 우쭐해했다. ‘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나는 엄마를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여기면서.

하지만 우쭐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증 환자에게 드는 비용은 ‘병원비 플러스알파’라는 걸 깨달으면서다. 척추 골절 탓에 제작한 상체 보조기는 38만원, 누웠다 일어날 때 척추에 부담을 적게 주기 위해서 산 모션 침대는 290만원, 면역력이 떨어져서 산 식기소독기는 56만원…. 치료비 외에도 일상 유지에 필요한 지출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계속됐다. 나는 영수증을 받아들 때마다 불안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입주 간병인을 두는 지인들을 볼 때면, 10년 전 고민하고 고민해서 아이패드를 산 것까지도 후회됐다. 한국 사회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려면 돈이 많거나 가족이 많아야 한다는 한 의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게다가 엄마가 걸린 암은 주치의조차 “재발 가능성이 90%”라는 다발성 골수종이다. 그 말은, 1차 항암 때 사용한 약제는 급여 적용을 받더라도, 재발했을 때 사용해야 하는 약제가 아직 급여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치료비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2020년 한국혈액암협회가 암 환자와 가족 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신체·정신적 어려움보다 ‘경제적 고통’이 더 힘들다고 답한 사람이 68%(107명)였다. 특히 응답자의 86.5%는 비급여 항암치료가 경제적으로 부담돼 치료를 중단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나는 자꾸 엄마 통장의 잔고를 확인했다. 엄마가 미리 가입해둔 민간보험 내역을 살폈다. 그중 특약사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치매 간병인 특약. 몇년 전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엄마, 내가 다른 건 다 간병하는데 치매는 못 해. 그러니까 치매 걸리지 마.”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이 특약을 포함했을까.

존엄사·간병살인 관련 기사에는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나라면 빨리 죽겠다’ ‘존엄사 법안을 통과시켜라’ 같은 댓글이 달린다. 나는 이런 댓글들에서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건보 재정이 바닥났다는 지적과 과중한 치료비 부담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나는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한국의 의료비 총액 기준 공공재원 지출 비율은 2020년 기준 6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6.3%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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