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책지성팀 선임기자
대한민국예술원(예술원)을 어찌할 것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위원회가 지난 17일 예술원 운영방식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예술원 문학분과 회원 27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2명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작가회의가 지난 19일 예술원 비판 성명을 낸 데 이어 25일에는 문인 744명과 다른 장르 예술가 329명이 연명한 예술원 개혁 촉구 성명도 나왔다.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로 예술원 개혁 요구를 촉발한 작가 이기호가 주도했고 동료 문인·예술가들이 호응한 결과다. 이제 공은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원법의 개폐 권한을 지닌 국회로 넘어갔다.
문예위 소통위원회와 작가회의, 문인·예술가 연대 성명의 문제의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예술원 신입회원 선출 방식, 회원의 임기 그리고 대우가 그것이다. 예술원의 신입회원이 되자면 기존 분과 회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 때문에 기존 회원들과 친소관계에 얽매이게 되고 ‘끼리끼리’라는 지적을 듣는다. 2019년 법 개정으로 종신으로 바뀐 임기 규정도 문제다. 마지막으로 회원 한 사람당 월 180만원 정액수당을 주도록 한 대우 역시 개선 요구를 받는다.
지난달 이기호의 소설이 발표되고 그가 예술원법 개정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나서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소설가 이순원과 송경동 시인이 예술원 비판 글을 <한겨레>에 기고했고, 원로 문학평론가 김우종과 이시영 시인 등 문인들도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목소리를 보탰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의 기조도 동일했다.
그런데도 당사자 격인 예술원은 완강하게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예술원 비판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불거졌다가 사그라들곤 했던 과거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없던 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원 회장인 이근배 시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자간담회나 언론 접촉은 오히려 사태를 덧나게 할 뿐이니 가만히 있자는 게 회원들 사이의 기류’라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예술원 비판 주장의 동기가 의심스럽다며, 예술원에 관한 모든 것이 예술원법에 규정되어 있는 만큼 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일본예술원 역시 회원들에게 월 300만원 가까운 수당을 지급한다며, 정액수당이 부당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예술원 회원들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들이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물론, 1907년 제국미술원으로 출발해 지금에 이른 일본예술원을 대한민국예술원이 모범으로 삼아야 옳을까. 그보다는 따로 정액수당을 주지 않고 오히려 회원들이 연회비를 내기도 하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사례를 좇아야 하지 않을까.
예술원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한 로비와 예술원상 수상을 둘러싼 추문이 나온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지금 회원들이 과연 대한민국 예술을 대표할 만한지에 대한 의문도 작지 않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도대체 예술원이 무엇을 하는 기관이며 왜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대중의 반응일 것이다. 평생을 예술에 바친 원로 예술가들을 예우하는 방식이 월 180만원의 수당이어야만 할까. 그 수당이 오히려 원로 예술가들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와 촛불 정국, 대통령 탄핵 같은 최근의 커다란 사회 이슈들과 관련해 예술원은 침묵으로 오로지했을 뿐이다.
이기호의 소설에서도 강조됐다시피, 예술원 원로 회원들에 대한 금전적 예우와 청년 예술가들에 대한 빈약한 지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생활이 어려운 원로 예술가들을 보살피는 일은 물론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정액수당이 불필요해 보이는 분들에게까지 세금을 쏟아붓는 방식은 곤란하다고 본다. 같은 돈이라면 정말 형편이 어려운 청년 예술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 더 나아가, 예술원은 청년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을 기관의 주된 사업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세대간 단절을 극복하고, 연속성 속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 길이다.
예술원과 회원들이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만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차제에 회원들 스스로 개혁 요구에 응답하는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 그것이 후배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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