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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500년 전 선비의 표류기를 읽다

등록 2021-07-01 13:05수정 2021-07-02 02:38

최재봉|책지성팀 선임기자

여행의 본질은 낯선 것과의 만남에 있다. 기대했던 풍광을 접하는 기쁨도 크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맞닥뜨릴 때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된 여행보다 어긋나고 실패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이치가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표류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물결 따라 떠돌다가 이르게 되는 뜻밖의 장소와 그곳에서 접한 풍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낳았다. <로빈슨 크루소>와 <15 소년 표류기> 유의 표류담 또는 <걸리버 여행기>나 <유토피아> 같은 알레고리적 여행기가 주는 매력의 바탕에는 우리 안의 방랑 본능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표류한 때는 풍파가 험악한 때로, 해상의 하늘이 흙비로 인하여 날마다 흐렸다. 돛과 돛대, 배를 매는 줄과 노가 꺾이거나 없어졌으며, 기갈로 인하여 열흘 동안이나 크게 고생했는데, 하루 사이에도 물에 빠져 낭패를 볼 조짐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5세기 조선 관리 최부는 추쇄경차관으로 부임했던 제주에서 부친상 소식을 듣고 급하게 배를 띄웠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를 떠돌게 됐다. 13일 동안 표류하며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던 최부 일행은 가까스로 중국 남동부 해안에 상륙했고 그곳에서부터 항저우와 양저우, 톈진, 베이징을 거치며 136일 동안 중국 대륙을 종단한 끝에 의주를 통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그가 성종의 지시로 청파역에 머물며 기록해 바친 일기가 <표해록>이다.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가서 부친의 삼년상을 치르고 싶었던 선비가 자식 된 도리조차 미루면서 기록 집필에 매진해야 했던 까닭은 최부의 여행이 그만큼 희소성을 지닌 것이었기 때문이다. 압록강과 요동을 거쳐 베이징까지는 조선 사신이 수시로 다녀왔고 그 결과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박제가의 <북학의> 같은 적잖은 수의 연행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 사람이 중국의 강남 지방을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한 사례는 아예 없다시피 했던 터였다.

“우리 나라 사람으로 양자강 이남을 직접 본 사람이 근래에 없었는데, 그대만이 두루 보았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소?”

최부가 귀국길에 요동에서 마주친 조선의 사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다에서 길을 잃고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불운과 시련이 행운으로 몸을 바꾸는 장면이다. 최부 역시 여정의 어느 지점부터는 자신의 표류와 의도치 않은 유람이 지닌 가치를 깨닫고 착실히 메모를 해 두었던 듯싶다. 1488년 윤정월 3일(이하 음력) 일행 42명과 함께 제주를 떠나서부터 압록강을 건넌 6월4일까지 매일의 날씨와 상황을 세세하게 정리하기란 빼어난 기억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항저우는 동남의 도회지로 집들이 이어져 행랑을 이루고, 옷깃이 이어져 휘장을 이루었다. 저잣거리에는 금은이 쌓여 있고 사람들은 수가 놓인 비단옷을 입었으며, 외국 배와 큰 선박이 빗살처럼 늘어섰고, 시가는 주막과 가루(歌樓)가 지척으로 마주 보고 있다. 사계절 내내 꽃이 시들지 않고 8절기가 항상 봄의 경치니 참으로 별천지라 할 만하다.”

최부는 양쯔강 이북에 비해 풍요롭고 여유 있는 강남의 풍정에 감탄하고 하지장, 왕희지, 백낙천, 소동파 등의 흔적을 지나치며 시흥에 젖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지방 관리들로부터 조선의 연호와 법도는 무엇인지, 나라의 크기와 행정 구획, 물산은 어떠한지 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에 성실하게 답한다. 관리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까지 종이와 붓을 들고 와 다투어 필담을 요청했다고 그는 적었다. 최부는 이 여정에서 수차(水車) 제작 기술을 배워 나중에 충청도 지방의 가뭄 피해 때 활용하기도 했다. 이 생생하고 귀한 여행기를 두고 소설가 이병주는 문학적으로나 역사적 기록으로서나 <로빈슨 크루소>에 못지않다고 극찬한 바 있다.

500년 전 사람 최부가 힘들게 답파했던 여정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고 빠르게 누빌 수 있다. 그럼에도 배를 타고 운하를 거슬러 오르는 옛사람의 여행 방식에는 그 나름의 풍취와 낭만이 없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경을 넘는 여행이 당분간 어려운 지금, <표해록>을 읽으며 시·공간의 여행을 대신해 보는 것은 어떨까.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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