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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람_칼럼 읽는 남자] 아프간에서의 원죄

등록 2021-08-25 16:13수정 2021-08-26 02:35

임인택ㅣ여론팀장

한 국가의 역사를 개관하는 책의 서언에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이런 투로 축약되어 있다.

“왜 이 나라의 역사는 그리도 휘몰아쳐왔는가.” “왜 이 나라는 다른 나라들의 노리개가 되어왔는가.” “어쩌다 (그들 지도자가 죽었는데도) 광신자들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조직이 계속해 민중의 목을 쥐는가.” “왜 내정불안과 하나된 통치의 부재가 계속되는가.”

국적이 옵션이라면 감히 선택하지 못할 나라. 맞다, 아프가니스탄. 사선에 선 조력자들과 난민을 수용할지 여유로운 쟁점이 되고, 그 쟁점은 늦장마의 정화조처럼, 안 된다, 지금 체류 중인 그 나라 사람들도 쫓아내라 주장으로까지 역류하는 이 나라와 아프간의 거리는 5천㎞다. 싱가포르보다 조금 멀고 발리보다 가까운 나라.

2~3년 전 네덜란드 대학원에서 만난 동기들의 국적은 40개가 넘었다. 작은 나라에서 전세계의 20%가량을 만난 셈이다. 다수의 미국과 중국, 유럽, 남미,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등. 한둘씩인 국가들도 있었다. 취업을 위해 석사가 거의 필수 자격이 되었다는 러시아의 청년, 와세다대 건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이민을 목표로 유학 온 일본 청년, 의지의 생태·환경주의자 호주 청년, 제 직장 월급보다 네덜란드 지원 생활비가 많다는 네팔 정부 관료…. 전공이 도시개발이라 저마다 목표가 뚜렷했고, 마치 세계 도시(공동체)의 경향도 내보이는 듯 동기들의 온갖 ‘출처’가 대비됐다.

그중 정말 이런 인상이 있나 하면서 인사 나눴던 이가 있다. 수염 사이 중간에 박힌 코는 오뚝했고, 눈매는 웃기 위한 소품인 양 선했던 그의 고향은 아프간. 한국 다녀간 기억을 마치 달나라 여행이나 하고 온 듯 말하던, 학기 중간 어쩌다 웃음 가신 표정으로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학업을 중단하게 될 것 같다” 고민을 토로하던, 하필 정부 고위직으로 호출됐다던 카불 사람. 동기들은 얼마 뒤 그의 페이스북에, 와츠업에 공유된 임명 사진에 죄다 “좋아요”를 누르고 환호했다. 당시도 아프간은 과거처럼 전쟁 중이고 과거처럼 불안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끔뻑 웃으며 밥이나 먹자 부르던 그는 그리고 이제 말하자면 탈레반이 쫓을 정부 부역자다.

국가와 민중의 인상이 대조되어 각인된 회로엔 의심의 여지 없이 8년여 전 읽었던 아프간 출신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연을 쫓는 아이>)이 있었겠다. 전쟁의 나라에서 기구하게 운명 지어진 형제가, 특히 원죄를 품어온 형이 용서와 화해의 세계로 나아가기까지, 아프간은 상흔에도 무던히 웃는 이들의 터전이었고 구원을 인내하는 땅 같았다. 마치 중세 암흑기, 권력자와 원리주의자들이 두려워한 ‘웃음’(<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을 생래로 은유해낸달까.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국외로 탈출하려는 피란민 가운데 한 소년이 대피 작전에 나선 미군과 웃으며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있다. 미 해병 제공. 카불 로이터/연합뉴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국외로 탈출하려는 피란민 가운데 한 소년이 대피 작전에 나선 미군과 웃으며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있다. 미 해병 제공. 카불 로이터/연합뉴스

책의 주인공은 “과거에 대해, 과거를 묻어버릴 방법에 대해 떠들어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엉터리이다. 아무리 깊이 묻어둬도 과거는 항상 기어나오게 마련이다”라며 동생에 대한 원죄를 25년여가 지난 2001년 비로소 되짚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경로엔 아프간을 노리개(“pawn”) 삼는 나라들(맨 위의 책에선 “영국, 소련, 미국을 포함해”라고 적혀 있다)과 권력 투쟁의 잔악한 내정불안이 자리함을 간과하긴 어렵다.

하니 묻게 된다. 국가는 무엇으로 잊는가, 왜 ‘원죄’의 주어가 되지 않는가. 원죄는 왜 개인의 몫인가.

호세이니는 최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지난주는) 20년 동안 아프간에서 가장 암울한 날들”이라며 “지금은 (세계가) 아프간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년 동안”이란 한정수사만큼 비극적인 말은 없겠지만, 말 자체로 설득력은 없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아이, 노숙자에게 코트를 벗어 입힌 행인, 독극물로 타죽은 스타벅스 앞 가로수에 아파하는 시민의 마음에 당초 논리는 있지 않으니까. 논리는 계산 중이거나 끝낸 (듯한) 자들의 책임을 물을 때 필요하다. 지제크의 ‘탈레반의 ‘순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서재정의 ‘미국과 탈레반의 ‘천연가스’ 흑역사’, 전범선의 ‘무책임한 제국과 한국’, 손아람의 ‘카불의 사라 카리미에게’가 그러했듯.

지난주 그에게 급히 ‘타전’했다. 잘 지내냐고, 몹시 궁금하다고, 너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고. 수일째 밤마다 일기처럼 이 글을 쓰며 그의 회신을 기다린다. 바라는 소식들은 죄다 오지 않는 8월. 타왑이 울부짖는 얼굴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맨 위의 책은 학계에서 종종 인용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메러디스 L. 루니언, 2017)이다.)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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