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평화비(소녀상)가 새롭게 설치된 데 대해 고강도 ‘보복 조처’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한국의 ‘촛불집회’를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 합의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한국의 ‘촛불민심’과 아베 정권의 강경한 태도가 완충장치 없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재작년 일-한 합의(12·28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돼 (양국이) 이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30일 한국의 시민단체가 부산의 일본총영사관에 면한 보도에 소녀상을 설치한 것은 일-한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과 동시에 영사관계에 관한 ‘빈 조약’에 규정돼 있는 영사기관의 위엄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 총영사의 일시 귀국 △한-일 통화스와프 협의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 △부산영사관 직원의 부산시 관련 행사에 대한 참가 연기 등 4개 항목의 보복 조처를 발표했다. 주한 일본대사의 본국 소환은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때 이후 4년 반 만이다.
일본 정부가 이런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부산 소녀상 사태를 그대로 두면 한국 시민사회의 거센 민심에 의해 12·28 합의의 운명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끝내길 원하는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를 용납하기 힘든 ‘합의 위반’으로 보고 있다. 스가 장관은 이번 조처를 언제까지 실시할 것이냐는 질문에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응하겠다. 이번 같은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어 유감이지만, 국가 간에 약속한 것은 이행해줬으면 하는 강한 생각”이라고 답했다.
일본은 재빨리 미국의 지지 확보에 나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 “양국 정부가 책임을 갖고 합의를 실시해 가는 게 중요하다. 이에 역행하는 건 건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이 강력한 보복 조처와 함께 부산 소녀상 철거를 거듭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정을 이끌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과 정면대결을 택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없어 의례적 조처를 취하는 데 그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렀다. 사실상 항의 차원의 초치로 해석할 수 있지만, 외교부는 ‘면담’ 성격이라고 밝혔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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