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6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새로 설치한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초치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6일 부산 일본총영사관 평화비(소녀상) 사태에 내놓은 보복 조처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소녀상이 설치된 지 불과 1주일 만에 내놓은 이번 조처에 대해 일본에서도 ‘강한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한 초강수 조처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 조처를 발표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6일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보면, 스가 장관이 강조한 것은 보복 조처 내용이 아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었다. 발표의 무게중심을 일본의 ‘보복’이 아닌, 한국의 ‘이행’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빠진 직후부터 12·28 합의의 운명을 우려하며 “한국의 내정 변화에도 합의 이행엔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견해를 꾸준히 밝혀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지난달 30일 부산 소녀상 설치를 사실상 용인하는 모습을 보고 과감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처는 박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한국의 ‘촛불민심’에 의해 12·28 합의가 파기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일본의 선제 조처로 해석된다. 이는 합의의 폐기 또는 재협상을 공언하고 있는 한국의 차기 대선 후보군을 향한 견제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번 조처는 일본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조처가 한국 민심을 자극해 양국 관계가 ‘파국’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체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물론 12·28 합의 역시 사실상 파기 수순으로 접어들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스가 장관은 “일본과 한국은 그야말로 이웃이고 매우 중요한 국가다. 그런 가운데 일본이 이런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다시 한번 “서로 약속한 것은 지켜줬으면 하는 강한 생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가 장관은 ’이번 조처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응하겠다”면서도 “이번에 또 부산시에 (소녀상이) 새로 생겼으니까 정부로선 이번 조처를 취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항의를 받아들여 부산 소녀상에 대해 납득할만한 조처를 취할 경우 이번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여론을 무시한 채 일본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 언론도 일본 정부의 이번 조처로 당분간 한일관계 악화는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한일 스와프 논의 중단과 주한 일본대사와 영사 소환 등 강경 조치를 잇달아 내놓은 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위로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일본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2·28 합의에서 밝힌 사죄 내용을 자신의 입으로 말해달라는 일본 의원들의 요구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내 달라는 한-일 시민사회의 요청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딱 잘라 거절한 바 있다. 그로 인해 한국에선 12·28 합의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봉인해 위안부 문제를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망각의 합의’라는 비난이 이어져 왔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합의 직후인 지난해 1월에는 12·28 합의를 일본의 사죄로 본다는 비율이 19%였는데, 9월에는 8%까지 줄어들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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