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의 반인륜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침략전쟁의 주모자들과 무단합사된 한국과 타이완, 일본의 희생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연대 행동인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도쿄대집회가 열린 일본교육회관 앞에 우익단체 회원들이 차량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일 운전기사 일본우익에 겁 먹고 “못가겠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이 예상되던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3일 <한겨레> 취재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 한국위원회 평화통신사’ 일행과 함께 일본 도쿄에 갔다.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은 한국·대만·일본의 시민단체들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저지하고, 태평양전쟁에 강제동원돼 숨진 뒤 1급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된 4만9천여명의 합사를 취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연대단체다. 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8·15를 맞아 이러한 요구사항을 전 세계에 전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동시에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과 관련된 일본 유적지를 둘러보고 양국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그려본다는 취지로 평화통신사를 꾸렸다. 이에 태평양전쟁 피해자 유족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대학생 등 150여명이 통신사로 길을 떠났다.
일본 우익의 추격전
13일 오후, 나리타 공항에서 강제합사 피해자 유족의 증언대회가 열리는 도쿄 지요다구 일본교육회관으로 향하는 길. 적지 않은 인원과 큰 짐들이 함께 움직이느라, 오후 3시에 시작되는 증언대회에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했다. 버스 두 대에 나눠탄 참가자들은 이날 저녁으로 예정된 촛불집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고이즈미 총리가 정말 15일에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간신히 제 시간에 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교육회관 근처 지하철 진보초역을 지날 무렵, 버스는 도로에 세워진 일본 우익단체 차량에 가로막혔다. 우익단체 회원 수십명은 차량에 달린 사이렌을 울리며 확성기로 “일본이 너희 나라냐? 야스쿠니 참배에 간섭하지 마라.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외쳐댔다. 버스가 이들을 피해 우회로를 선택하자, 이들은 ‘특수공격대’ ‘정치결사 고쿠류샤(國隆社)’ 등의 단체 이름이 적힌 미니버스 10여대로 참가자들이 탄 버스를 에워싸다시피하며 추격했다. 이들은 20여분만에 일본 경찰에게 제지당했고, 한국 참가자들은 그제서야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익에 겁먹은 일본인 버스기사 ‘한낮 도심의 추격전’으로 시작된 일본 우익의 ‘도발’은 행사 마지막날까지 계속됐다. 이들은 이날 저녁 교육회관~야스쿠니 신사 앞~긴카 공원까지 이어진 촛불행진 때도 차량과 확성기를 동원해 집회를 방해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두르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참가자들이 대절한 버스의 운전기사들은 “야쿠자와 연결된 우익들의 협박에 시달려 ‘장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며 약속된 일정대로 이동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5명이 앉을 수 있는 뒷자리에 4명만 앉아서 가라고 한다든가, 서서 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출발을 거부했던 것이다. 행사에 사용된 깃발와 공연도구 등을 트렁크에 실으려 하자 “짐이 너무 많다”며 트집을 잡기도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한 곳에서 행사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이들은 “못가겠다”며 버텼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우익들이 무섭다”며 출입구와 멀리 떨어진 곳에 버스를 대곤 했다. 이들의 ‘어깃장’은 행사 사흘째밤, “더는 운행을 못하겠다”며 계약을 어긴 데서 ‘백미’를 이뤘다. 공동행동 사무국 실무진들은 다음날인 16일 아침 6시가 되어서야 겨우 다른 버스를 구할 수 있었다. 그 투철하다는 일본의 서비스 정신도 우익의 힘 앞에선 ‘의미 잃은 글자’일 뿐인 순간들이었다. 일본 경찰의 ‘과잉보호’도 놓칠 수 없는 드라마였다. 이들은 일행이 묵은 이케부쿠로의 한 호텔에 두 차례나 들러, 투숙한 참가자들의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고, 여권번호까지 적어가는 ‘오버센스’를 발휘했다. 실무진들이 “우익들을 자극하지 말고 행동 조심하라”는 당부 혹은 협박을 들은 것은 물론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와 가오진 쑤메이
지난달, 공동행동이 서울에서 연 야스쿠니 신사 관련 국제 토론회에 참석한 가오진 쑤메이 대만 입법위원(국회의원)은,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가 “도쿄 행사를 취재하러 갈 계획”이라고 하자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었다. 야스쿠니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에서 두 차례 시위를 했던 그는, 이미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에게 여러 차례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터였다.
가오진 쑤메이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동원돼 학살당한 대만 원주민의 후예로, 리안 감독의 <결혼피로연> 등에 출연하기도 한 유명배우다. 화려한 배우로 살아가던 어느날 위암이 찾아왔고 생사의 기로를 벗어나면서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입법위원이 된 그는 2002년 8월, 운명처럼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일제시대 일본군이 둘러서서 원주민 ‘고사의용대’ 한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사진이었다. 총알받이로 목숨을 잃은 조상들, 한족의 동화정책으로 원주민의 정체성을 잃은 그 후손들의 삶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발벗고 나서게 된다.
기자를 걱정해주던 그는, 정작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전사’였다.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오사카지방재판소에 대만인 합사 취소 소송을 내고 도쿄로 오던 길에도, 촛불집회가 벌어지던 순간에도, 기자회견을 열 때나 호텔에 투숙할 때도 일본 우익들이 언제 테러를 시도할 지 몰라 조마조마한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만 원주민 복장을 입고, 빡빡한 일정에 지칠 법도 한 50여명의 대만 참석자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었다. 집회 행렬의 맨 선두에 서서 “뻔뻔한 야스쿠니, 우리 조상들의 영혼을 돌려달라”고 외치던 그였다.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던 15일 새벽에는 합사된 원주민 2만8천여명의 영혼을 대만으로 데려오려는 의식을 신사 앞에서 몰래 치르려다 경찰과 일본 우익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저 멀리서 고이즈미 총리가 결국 참배를 강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원주민 민요를 부르며 끝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합사 취소를 향한 그의 진심을 하늘도 알았을까. 어느샌가 처연한 빗방울이 신사 앞을 적시고 있었다.
얼굴만 삐죽 내민 국회의원들
김희선·임종인 의원 등 우리나라 국회의원 11명은 ‘야스쿠니 신사 진상조사단’을 꾸려 지난 12일 신사에 질의서를 전달하고, 신사를 둘러봤었다. 이때 신사가 뒷문 출입을 요구하는 등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사기도 했었다. 그런데, 평화통신사 참가자 한 명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의원님들? 누가 공동행동의 모든 일정에 참가해달라고 했습니까? 선두에 나서 깃발을 흔들라고 했습니까? 그래도 도쿄까지 와서 카메라 비춰주는 행사에 얼굴 비쭉 내밀고 사라지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가오진 쑤메이처럼 온 몸을 던지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진심으로 야스쿠니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건 느끼게 해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제라도 야스쿠니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건가요?”
유텐지에 울린 진혼곡
15일 평화통신사 일행이 둘러본 곳은 △야스쿠니 신사 대체시설로 주목받은 ‘지도리 가후치’와 △해방 뒤 일본에서 한국인들을 태우고 돌아오다 의문의 폭침을 당한 배 우키시마마루 피해자들의 유골이 보관된 ‘유텐지’였다. 아무래도 한국인 피해자 유골이 보관된 곳인데다, 이들의 죽음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는 탓인지 일행의 관심은 유텐지에 쏠렸다.
1718년 건립된 유텐지는 1971년부터 우키시마마루 피해자 1135구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 “유골들은 그 전까지 후생성 지하실에 보관중이었는데, 어느날 후생성 관리가 이 절의 주지와 술을 마시다 ‘지하에 있는 유골 관리가 골칫거리’라는 말을 했고 주지가 ‘그럼 우리 절로 갖고 오라’고 해 이 절에 오게 됐다”는 것이 유텐지 안내를 맡아 준 이일만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함 하나에 14명 몫의 유골이, 아니 선박 잔해와 단추, 볼펜 따위가 함께 보관돼 있고 한해에 한차례 후생성 관리가 둘러볼 때에만 유일하게 보관함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위령제 따위는 기대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유골 반환을 위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협상 결과도 낙관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무국장은 △유골 안치 경위 규명 △일본 정부의 사죄·배상 △이북 출신 유골의 처리 등을 둘러싸고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환된 유골은 단 1구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전몰자 유골 발굴에 연간 80억원을 쓰는데, 한국 정부는 유골 반환이나 사죄를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피해자의 아들·딸들인 우리가 죽고 나면, 그 다음 세대는 피해자들을 기억조차 할 수 있을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유골함 앞 제단에 놓인 방명록에 일행이 이름을 써넣는 동안, 침몰자들을 위한 법타·진관 스님의 반야심경이 울려퍼졌다.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부푼 가슴으로 배에 몸을 실었다가, 의혹 가득한 참변을 당해 눈조차 감지 못한 이들을 위한 60년 만의 진혼곡이었다.
도쿄/<한겨레>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의 반인륜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침략전쟁의 주모자들과 무단합사된 한국과 타이완, 일본의 희생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연대 행동인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참가자 200여명이 12일 저녁 촛불을 들고 도쿄 시내를 행진하는 동안 보수우익단체 회원들이 차량 스피커를 이용해 ‘야스쿠니 신사를 모욕말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방해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도쿄역 근처 토키와바시 공원을 출발해 긴자를 거쳐 히비야 공원까지 3.5km를 걸으며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한다‘, ‘일본 정부는 헌법을 지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도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평화통신사’ 일행을 쫓아다니며 확성기로 각종 위협을 가하고 있는 일본 우익단체 차량.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우익에 겁먹은 일본인 버스기사 ‘한낮 도심의 추격전’으로 시작된 일본 우익의 ‘도발’은 행사 마지막날까지 계속됐다. 이들은 이날 저녁 교육회관~야스쿠니 신사 앞~긴카 공원까지 이어진 촛불행진 때도 차량과 확성기를 동원해 집회를 방해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두르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참가자들이 대절한 버스의 운전기사들은 “야쿠자와 연결된 우익들의 협박에 시달려 ‘장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며 약속된 일정대로 이동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5명이 앉을 수 있는 뒷자리에 4명만 앉아서 가라고 한다든가, 서서 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출발을 거부했던 것이다. 행사에 사용된 깃발와 공연도구 등을 트렁크에 실으려 하자 “짐이 너무 많다”며 트집을 잡기도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한 곳에서 행사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이들은 “못가겠다”며 버텼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우익들이 무섭다”며 출입구와 멀리 떨어진 곳에 버스를 대곤 했다. 이들의 ‘어깃장’은 행사 사흘째밤, “더는 운행을 못하겠다”며 계약을 어긴 데서 ‘백미’를 이뤘다. 공동행동 사무국 실무진들은 다음날인 16일 아침 6시가 되어서야 겨우 다른 버스를 구할 수 있었다. 그 투철하다는 일본의 서비스 정신도 우익의 힘 앞에선 ‘의미 잃은 글자’일 뿐인 순간들이었다. 일본 경찰의 ‘과잉보호’도 놓칠 수 없는 드라마였다. 이들은 일행이 묵은 이케부쿠로의 한 호텔에 두 차례나 들러, 투숙한 참가자들의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고, 여권번호까지 적어가는 ‘오버센스’를 발휘했다. 실무진들이 “우익들을 자극하지 말고 행동 조심하라”는 당부 혹은 협박을 들은 것은 물론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와 가오진 쑤메이
영화배우 출신의 대만 입법위원 가오진 쑤메이가 15일 도쿄 메이지공원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일제에 의해 태평양전쟁에 동원됐다 숨진 ‘조선인‘들의 유골 1135구가 있는 도쿄 유텐지(우천사)를 찾은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쪽 참가자들이 16일 오전 납골당 입구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도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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