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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옛 일장기 ‘펄럭’…고요속 긴장의 ‘화약고’

등록 2006-08-21 19:41

지난 15일 일본 가와가나현 요코스카항에서 레이더 장비를 수리중인 최첨단 이지스함(가운데 배). 부두 뒤로는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15일 일본 가와가나현 요코스카항에서 레이더 장비를 수리중인 최첨단 이지스함(가운데 배). 부두 뒤로는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동북아 ‘평화의 심장’ 겨눈 이지스함 즐비
한국방문단 등장에 미 헌병 나타나 감시
“핵항모 원자력 누출땐 반경 8㎞ 초토화”
‘핵항공모함’ 배치될 일 요코스카항 미군기지를 가다

일본 도쿄에서 버스로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은 일본 자위대 해군기지이자, 미국 해군의 유일한 국외 모항기지다. 부두에는 레이더 장비를 수리 중인 미국 이지스함을 비롯해 미·일의 이지스함·전투함 10여척이 정박해 있었다. 오는 2008년에는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까지 배치된다. 기지 바로 옆에는 ‘미카사 박물관’이 있다. 1905년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전쟁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해군제독이 탔던 전함 미카사를 개조해 꾸민 박물관에는 일본이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지닌 옛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강행된 8·15 광복절 오후, 민족문제연구소의 기획으로 구성된 ‘평화통신사’ 일행 150여명과 함께 찾아간 요코스카항은 언뜻 평온한 휴일의 일상에 젖은 듯했다. 기지 입구로 통하는 100m 남짓한 길은 나무 판자를 깔고 주변에 나무를 심는 등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부두에 정박한 이지스함들과 기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날도 요코스카 주민 20여명이 평화롭게 벤치에 앉아 바다를 구경하거나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 ‘이방인’들이 기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지 30여분 만에 경비정을 타고 미군 헌병 둘이 나타났다. 이들은 일행이 떠날 때까지 계속 주변을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코스카 기지는 태평양의 하와이에서부터 아프리카 희망봉까지를 아우르며 상황이 벌어졌을 땐 언제든 실전에 배치될 채비를 갖춘 전투 기지다. 미 해군 7함대가 머무는 이 기지는 2005년 2월 현재 핵탄두를 탑재한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최첨단 이지스함 11척(미국 7척, 일본 4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이지스함은 2003년 이라크전에 투입돼 이라크를 향해 토마호크를 발사했다. 지난달 북한이 대포동 2호를 쏘아올린 직후, 미국은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탄도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와 스탠더드 요격미사일(SM3) 발사 체제를 갖춘 이지스함 4척을 내년부터 2010년까지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핵항공모함 기지까지 되는 것이다.

요코스카가 핵항공모함의 모항이 된다는 것은,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본의 핵전쟁 수행 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과 북한에 큰 위협이어서, 중국은 이지스함 2척을 확보하는 등 해군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북한은 끊임없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고 있다. 한국도 일본을 의식해 2009년까지 이지스함 3척을 건조할 예정이다. 핵항모 배치가 동북아 각국의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일미군을 그저 ‘일상’으로 받아들이던 주민들이 기지 반대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핵항공모함 배치 계획 때문이다. 요코스카에서 핵항공모함 배치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히로사와 쓰토무는 “핵항공모함에서 원자력 누출 사고가 생길 경우 요코스카에서 반지름 8㎞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숨지고, 반지름 150㎞까지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예측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며 “이 계획의 위험성이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만5천여명이 주일미군 군무원이거나 ‘기지 경제’에 종사하고 있어 70%가 ‘주일미군 주둔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 왔지만, 지금은 주민의 90%가 ‘핵항공모함 배치만은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2014년까지 자마 기지와 요코타 기지에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와 미 공군 제5사령부가 옮겨오면, 이 일대는 반경 60㎞ 안에 미·일 양국의 실질적인 공동 육·해·공군 사령부가 들어서게 된다. 일본 자위대와 주일미군이 기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물론, 공동 지휘·훈련 체계를 갖춰 ‘일체화’한다는 주일미군 재편의 핵심목표가 사실상 ‘완성’되는 셈이다. 미국의 ‘가상 적’인 중국과 북한으로선 심각한 안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화통신사’에 동행했던 인터넷신문 <평화만들기> 김승국 대표는 미군 헌병들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요코스카항을 떠나면서 “오키나와~요코하마~한반도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쟁선’이 구축되고, 요코스카가 미·일 해군 최대의 전진배치 거점이 되는 상황”이라며 “북한 처지에서는 대북 공격력 증강으로 보이기 때문에 엄청난 공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로사와도 “일본 정부는 ‘군대를 운영하는 것보다 싼 값으로 일본을 방위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한 해 2700억~2800억엔을 요코스카 기지에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그 돈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군비확장 경쟁을 재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 바람 속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군기가 휘날리는 요코스카항의 바닷바람엔 동북아 평화를 흔드는 불길함이 짙게 스며 있었다.

요코스카/글·사진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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