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왼쪽 둘째)과 다리오 길 아이비엠(IBM) 수석부사장(오른쪽 둘째)이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첨단 반도체 개발 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부상에 맞서 반도체·첨단기술 분야의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미·일이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일본은 미-중 전략 경쟁을 적극 활용해 한국·대만과 경쟁에서 밀렸던 자국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6일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를 계기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이 만나 반도체·첨단기술 등의 협력을 위한 공동성명에 합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이 사전에 입수한 성명을 보면, “경제적 번영, 경제안보 강화, 지역경제 질서 유지를 위해 미-일 협력을 심화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특정 지역에 공급을 의존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 이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주도로 출범한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한 협력 필요성도 언급됐다.
미·일은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가 조만간 설립하는 ‘국립반도체기술센터’와 일본 정부가 지난해 만든 ‘기술연구조합 최첨단 반도체기술센터’의 협력이 추진된다. 미·일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바이오·인공지능(AI)·양자 컴퓨터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신문은 “미·일이 반도체·첨단기술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기술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일본이 주요 협력 파트너로 떠오르며 큰 수혜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 역시 이런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세계적 반도체 회사의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런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18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대표 7명을 도쿄 총리 관저로 초대한 장면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이 회담을 마친 뒤 “우리 나라의 반도체 사업 부활과 일본에 대한 투자 확대를 위해 (2021년 10월) 정권 발족 이후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더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호응하듯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일본에 최대 5천억엔(약 5조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공장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해 2026년께부터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일본 남부 규슈의 구마모토현에 있는 대만 티에스엠시(TSMC)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올해 12월 완공하고 1년 뒤 반도체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구마모토/김소연 특파원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는 지난해 봄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해, 2024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텔은 일본에서 연구개발 거점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아이비엠(IBM)과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의 아이멕(IMEC)은 도요타·소니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8곳이 만든 신생 첨단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와 협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300억엔(약 2800억원)을 투입해 첨단 반도체 디바이스 시제품 라인을 만들 예정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미-중의 기술 패권 다툼 등으로 중요 물자의 공급망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흐름을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흥으로 연결하려 한다”고 전했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반도체 산업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 등에 밀리면서 자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제조 공장이 없는 상태다. 다만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선 여전히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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