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에 군사용 해킹 소프트웨어 페가수스를 제공해 정치인, 언론인 등에 대한 사찰 파문을 부른 이스라엘 기업 엔에스오 그룹의 로고. A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무장 정파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소재 파악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정치인·언론인 사찰 파문’을 일으켜 미국의 제재를 받은 이스라엘 기업들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통신은 보안업계와 이스라엘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스파이웨어 개발 업체 엔에스오(NSO) 그룹, 칸디루 등 자국의 기술 기업들을 하마스 납치 인질 수색 작업에 참여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기업들은 거의 무료로 정보당국을 돕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엔에스오 그룹은 군사 무기급인 스파이웨어 ‘페가수스’를 개발해 각국 정부에 수출해온 기업이다. 프랑스 파리의 비영리 언론 조직 ‘금지된 이야기들’(포비든 스토리스)은 지난 2021년 7월 세계 17개 언론사와 공동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50여개국에서 1천명의 기자, 활동가, 정치인 사찰에 페가수스가 사용되어 온 것을 확인했다.
이 조사 결과 발표와 거의 동시에,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시민연구실은 이스라엘 기술 기업 칸디루가 개발한 스파이웨어가 세계 곳곳에서 민간인 사찰에 사용되고 있는 걸 확인했다. 해킹과 불법 감시 추적 전문 기관인 시민연구실은, 적어도 10개 나라 정부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활동가, 기자, 정치적 반대 세력 100여명을 해킹해왔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해킹 도구가 파문을 일으키자 미국 상무부는 그해 11월 두 회사를 자국의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적 이해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기관으로 규정하고 제재에 나섰다. 이스라엘군은 미국의 제재 이후에도 이들 업체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지만, 직원 일부를 예비군에서 배제한 바 있다.
보안 업계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두 회사에 스파이웨어 성능을 신속하게 개선할 것을 요구했으며 두 업체는 다른 몇몇 업체와 공동으로 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하마스에 잡힌 인질들의 소재 파악을 위한 위치 추적과 안면 인식 기술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앞서 지난 19일 두 기업 외에 레이존, 애니비전 등 다른 업체들도 이스라엘군을 돕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업들은 인질들이 갖고 있던 이동전화기를 추적하거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 분석 작업을 맡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예루살렘 전략안보연구소 소속 사이버 보안 전문가 가비 시보니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 정부가 보안 업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공격적 사이버 기술’ 관련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 분야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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