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지난 12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남부 라파 난민촌에서 부상자를 대피시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육해공군 합동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며 거듭 주민 대피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가자지구 북부 주민 110만명 중 40만명가량이 남쪽을 향해 목숨을 건 피난 길에 올랐다.
15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스라엘군의 철수 명령을 따라, 지난 48시간 동안 가자지구 북부 주민 110만명 가운데 40만명이 살라딘 길을 따라 남쪽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는 하마스 쪽 말을 따 보도했다. 유엔 직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탈출하려는 과정에서 ‘거대한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피란길에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밝힌 살라딘 도로에서 지난 13일 주민 70여명이 폭격을 당해 숨진 사건과 관련해 누구의 소행인지에 대해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많았으며, 2살짜리 유아도 있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폭격을 했다고 주장하고, 이스라엘군은 부인하고 있다.
피란민들이 천신만고 끝에 가자지구 남부에 도착해도, 남부 쪽도 난리통인 건 다름이 없다. 가자지구는 세종시(465㎢)보다 작은 360㎢ 면적에 약 220만명이 사는 인구 밀집 지역이다. 가자지구 남부에 전체 인구의 5분1에 육박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으니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비비시는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유니스로 향하는 사람들을 취재한 기사에서 “(남부 쪽) 도시는 인구가 하룻밤 새 두 배로 늘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며 “모든 방, 골목, 거리에 사람들이 들어차 더 갈 곳도 없다. (방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부 도시 곳곳에도 이스라엘군이 폭격하고 있다. 무너진 건물과 잔해 사이로 식량이나 연료뿐 아니라 상점에서도 물을 구할 수 없는 ‘재앙적 상황’이 남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에게조차 하루 300㎖의 물 이외에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의료 상황도 절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가자지구 자체를 벗어날 방법은 사실상 없다. 길쭉한 모양의 가자지구는 서쪽은 지중해와 접해 막혀 있다. 동쪽과 북쪽은 이스라엘이 쳐놓은 장벽이 있고 장벽 너머에는 가자지구 진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진을 치고 있다. 남쪽 이집트와 접한 라파 통행로가 사실상 가자지구를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하지만 이집트는 난민 대규모 유입을 우려해 라파 통행로를 통해 가자지구 주민들이 넘어오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는 15일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최소 2670명이 숨지고 9600명 이상이 다쳤다며 “전례 없는 인도적 재앙”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공습으로 인한 실종자도 1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희생자도 1400명을 넘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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