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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한민의 탈인간] 극단적 상식, 상식적 극단

등록 2022-11-06 18:48수정 2022-11-07 02:37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의 활동가들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독일 포츠담의 바르베리니미술관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연작 그림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끼얹은 뒤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 세대 제공, AP 연합뉴스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의 활동가들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독일 포츠담의 바르베리니미술관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연작 그림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끼얹은 뒤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 세대 제공, AP 연합뉴스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급진적, 극단적, 전복적, 과격한… 등을 뜻하는 영어 형용사 ‘래디컬’(radical). 이 말이 칭찬으로 통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예술이다. 상식을 초월하는 예측 불허의 상상력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접근이 환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나라엔 예술가가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세상이 너무도 ‘래디컬’하기 때문이다. 상식과 예상을 벗어나는 사건·사람·발언이 난무하는 통에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다. 상대적으로 예술은 상식 수준에서 맴도는 듯하다. 한때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나 역시, 이 상식 밖 세상에 질려 점점 상식적인 생각밖에 못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제발 바다에 쓰레기 좀 그만 버렸으면, 동물들 좀 그만 괴롭혔으면, 숲 좀 보호했으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했으면 소원이 없겠건만, 이토록 평범한 생각도 진지하게 실천하다 보면 근본주의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최근 기후활동가들이 예술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영국·유럽의 주요 미술관들이 석유 반대 운동의 무대가 된 것. 시위자들은 고흐의 <해바라기>, 다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명화에 액상 토마토나 케이크를 투척하고 액자에 몸을 접착한 뒤 이렇게 외쳤다. “소중한 작품이 공격받는 걸 보는 기분이 어떤가? 지구가 공격받는 것은 괜찮은가? 인류의 미래를 죽이는 화석연료를 당장 금지하라!” 즉, 그들이 ‘공격’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 우리의 무관심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정체된 기후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여론의 주목을 끌어내려는 계산된 행동이었기에 작품 자체는 훼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류 여론은 ‘경악스럽다’ ‘과격하다’는 반응이고, 대부분의 활동가는 체포되어 재판 중이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치가들은 이런 ‘과격’ 시위를 강하게 처벌하는 신속한 법안 발의를 약속했다. 한시가 급한 기후위기 대응이 한없이 지체되는 걸 보다 못해 일어난 시위를 근절하는 것이 당국에 가장 시급했던 모양이다.

함부로 다뤄지는 자연과 보물 취급받는 예술을 비교한 발상이 처음은 아니다.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의 창립자 폴 왓슨은, 심해를 무참히 파괴하는 트롤 어업을 이렇게 비판했다. “누가 루브르박물관에 포클레인을 끌고 들어가 작품들을 박살 낸다면 당장 감옥에 갈 것이다. 전세계 바다와 밀림에선 그런 일이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처벌은커녕 정부 지원을 받는다.” 길어야 수천년인 미술사에 비해, 수억만년의 진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자연이란 작품에 대해 우리가 무지하다는 진단은 틀리지 않다. 인공물과 자연물에 대한 가치 평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를 이유가 있을까?

이번 시위는 예술품의 의미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만든다. 사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작품의 경우, 진품 훼손 여부는 일반인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부유한 미술관, 혹은 탈세를 목적으로 미술품에 투자한 억만장자가 손해 볼 순 있어도 말이다. 이미 최고의 3D 기술로 기록되어 있고, 셀 수 없이 복제/재생산되어 누가 마음먹고 파괴하려 해도 전세계인의 기억에 수천년은 남을 것이다. 게다가 원화를 구경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그나마 경호원, 보호 유리, 인파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원작을 정교한 복제품으로 바꾸면 대다수는 눈치도 못 채고 똑같은 감흥을 받으리라.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인류의 문화유산들은 아주 잘 있다. 문제는 자연유산, 특히 ‘돈 안 되는’ 것들이다. 6대 멸종 시대로 칭할 만큼 수많은 동식물이 인간의 끝없는 개발 행위 때문에 파괴되는데, 이런 만행에는 왜 경악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시위에 찬성하는 거냐고? 내게 권한이 있었다면 우리를 성찰하게 만든 동시에 예술의 급진성을 부활시킨 공로로 상이라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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