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 EPA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이 기밀 유출 사건을 다루는 미 정부의 방식에 동맹국들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안보실 내부 논의가 도·감청당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 등 피해국들이 진지하게 항의하며 사과·재발방지 요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7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유감스러운 이번 기밀 유출은 세계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증진하기 위한 우리 파트너들과의 신뢰와 확신을 이제까지 파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맹국들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진지함, 그리고 계속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고마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커비 조정관은 나아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행정부 고위급들에게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을 안심시키고 이들의 질문에 답해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문서들은 공개된 영역에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 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보도에 주의해달라고 언론에 당부했다. 동맹국을 도·감청한 정보가 담긴 기밀문서가 유출된 뒤 미국 정부가 취한 사후 조처에 대해 ‘동맹들이 고마워한다’고 할 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진 않은 것이다. 이번에 유출된 기밀문서에 도·감청으로 취득한 정보를 뜻하는 ‘시긴트’ 정보라는 내용이 표시된 미국의 동맹국은 한국과 이스라엘 정도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미국에 의해 지속적으로 도청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유출 사태의 당사자인 미 국방부 역시 사과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사브리나 싱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 국가안보실 논의 도청 논란에 대해 ‘사실이라면 한국에 사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사건은 검토가 진행 중이고, 법무부가 다루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이어 “우리는 한국과 아주 좋은 관계다”라고 말했다.
싱 부대변인은 ‘한·미 국방장관이 문서가 상당수 위조됐다는 데 동의했다는데 그 증거가 있냐’는 질문에는 “일부 온라인에 유출된 문건의 유효성을 물은 것 같은데, 특정 문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문서가 (유출 뒤) 추가로 조작됐는지를 알기 위해 평가하고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그는 국방부의 1차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45일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최대 피해국인 한국이 공식 항의를 통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대신 미국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미 국방장관 통화에서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대해 한·미의 평가가 일치했다”고 밝혔고, 11일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갖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15일에는 양국은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15일 “지금까지 내가 나눈 대화로는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에 영향을 줄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정보의 안전한 보호”와 “안보 협력 관계”를 명확히 하려고 동맹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진짜 핵심인 도청은 외면한 채 기밀 유출에 대해서만 주의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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