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관이 동맹국 정부를 도청한 기밀문서가 유출된 사건에 대해, 백악관은 이번 사건을 다루는 미국 정부의 방식에 동맹국들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과나 재발 방지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고 다른 관련국들도 침묵을 지키자, 미국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사태를 봉합하려는 모습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7일(현지시각) 이번 사태와 관련해 “동맹국들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진지함, 그리고 계속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고마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국방부의 사브리나 싱 부대변인은 ‘도청이 사실이라면 한국에 사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검토가 진행중”이라고 즉답을 피하면서, “한국과 아주 좋은 관계다”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지난 15일 “정보의 안전한 보호에 대해 동맹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역시 동문서답을 했다.
미 당국자들이 도청 여부에 명확한 답을 피하면서 얼버무리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미국은 기밀문서를 유출한 자국 군인들을 체포해 조사중인데, 도청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문서 유출이 문제라는 태도로 이 사건을 넘기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청 정황이 드러난 것도 문제이고, 해당 국가의 기밀문서가 유출되는 등 너무나 허술한 관리 상황 등이 전세계에 던진 충격파가 엄청나다. 도대체 미국은 동맹국의 정보를 어떻게 얻고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허투루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미국은 이에 대해 동맹국에 겸허히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이런 오만한 태도를 보이니, 실망감을 넘어 어이가 없다.
관련 당사국인 한국과 이스라엘이 모두 더 이상 문제삼지 않고 덮고 가려는 듯한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한국 대통령실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미국 입장 두둔에 온힘을 쏟는 듯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5일 한미가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며, 한미 정보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까지 참여하는 ‘한-미-일 정보동맹’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에 별다른 항의도 못한 채 ‘정보 동맹 강화’를 큰 혜택이라도 얻은 것처럼 여기는 이런 균형잃은 대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미국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한국 대통령실은 주권과 외교의 기본부터 되돌아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