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로고 옆에 일론 머스크 트위터 계정이 보이는 스마트폰이 놓여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수십년 만에 가장 큰 언론자유 향상이다.”(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혐오범죄 폭발로 이어질 것이다.”(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
지난달 25일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440억달러(약 56조496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에 대한 극과 극의 반응이다. 이 거래가 미디어 환경과 미국 정치·사회에 끼칠 영향이 얼마나 클지 예고하는 말들이기도 하다. ‘언론자유의 최대 확장’이라는 얼핏 이상적인 머스크의 구호가 왜 이렇게 첨예한 인식 차이와 우려를 낳을까?
트위터는 세계적으로 2억17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약 20억명에 비하면 엄청나지는 않다. 그러나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의 실시간 소통 수단으로 애용되는 특성 때문에 영향력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하루에도 몇차례씩 트위터로 정책과 정치적 시각을 밝힌다. 지지자들은 트위터로 대통령 소식을 듣고 현장 중계를 연결한다.
이런 영향력은 가짜뉴스와 혐오·차별 콘텐츠의 범람으로도 이어졌다. 트위터가 ‘흉기’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 극적으로 드러난 게 지난해 1월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동이었다. 트럼프가 퍼뜨린 부정선거 주장에 심취한 지지자들은 “싸우자”는 메시지에 의사당으로 쳐들어갔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가장 걱정하는 쪽은 약자와 소수자 그룹이다. 유대인 권리 옹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 회장 조너선 그린블랫은 성명을 내어 “민주주의에 슬픈 날”이라고 했다. 무슬림 단체들도 원래 심각했던 혐오 콘텐츠가 날개를 달 것이라고 걱정한다. 트위터의 외부 자문 그룹인 ‘트위터 신뢰와 안전 자문위원회’ 위원이며 무슬림 단체 법률고문인 수마야 와히드는 “머스크가 예고대로 트위터의 가뜩이나 약한 콘텐츠 조정 정책을 약화시키면 혐오와 거짓 선동은 훨씬 더 확산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이런 우려는 데이터가 뒷받침한다. ‘국제앰네스티 실리콘밸리 이니셔티브’가 여성 정치인, 언론인, 시민사회 활동가 778명에 대한 2018년 트위터 글 110만건을 분석한 결과, 유색인종 여성에게는 백인 여성보다 34% 더 많은 빈도로 모욕적이고 문제가 많은 글이 올라왔다. 흑인 여성만 따지면 84%나 더 많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 분석에서는 진짜뉴스보다 가짜뉴스가 70% 더 많이 리트위트되고, 가짜뉴스 전파 속도가 진짜뉴스보다 6배 빠르다는 결과가 나왔다.
트위터를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데 유용하게 쓴 사람으로는 트럼프가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트럼프라는 유명 인사가 극단적 언어를 사용해 정적에 대한 자극적인 공격을 하고 때로는 깜짝 발표를 쏟아내며 ‘트위터의 제왕’이 됐다. 그는 심지어 2018년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도 트위터로 공개했다. 장관 해임도 대상자가 모르는 사이에 트위터로 발표했다. 팔로어 8800만명을 거느렸던 그는 트위터의 성장과 부정적 성격 증폭에 크게 기여했다.
너무 나간 트럼프는 의사당 난동을 부추겼다가 계정을 영구정지당하는 대가를 치렀다. 2024년 대권 재도전을 노리는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만들어 새 확성기로 쓰려고 한다. 하지만 트위터가 대포라면 ‘트루스 소셜’은 권총도 못 된다. 그래서 머스크의 인수 소식에 트럼프의 트위터 복귀 가능성이 곧장 거론됐다. 인수 명분이 언론자유 확장이고, 그가 주장하는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 조처가 계정 정지이기 때문이다. 예상은 금세 현실이 됐다. 머스크는 지난 11일 “도덕적으로 나쁜 결정”인 트럼프 계정 영구정지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돌아가지 않겠다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트위터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은 트위터가 국가와 같은 수준의 행위자로서 민주당을 위해 트럼프의 언론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며 지난 6일 이 소송을 기각했다.
민주당 쪽은 2024년 대선 전망과 관련해서는 물론이고 올해 11월 중간선거까지 앞둔 상황이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에게 패한 데는 페이스북 등을 이용한 가짜뉴스 유포가 상당한 몫을 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트루스 소셜’ 최고경영자인 데빈 누네스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 4일 <폭스 비즈니스>에 출연해 트럼프가 머스크에게 은밀히 트위터 인수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억만장자가 디지털 공론장을 접수했음을 뜻한다. 이윤 최대화와 개인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극대화를 위해 공론장 기능이 희생될 가능성이 커졌다.
마크 저커버그가 경영하는 페이스북도 이윤을 위해 가짜뉴스 대응 등에 소극적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선거에서도 페이스북을 이용한 가짜뉴스가 맹위를 떨치면서 규제 논의가 활발해졌다. 특히 지난해 10월 내부고발자가 “페이스북은 사회적 이익과 기업 이익 사이에서 항상 기업 이익을 택했다”고 폭로한 게 결정적이었다. 내부고발자는 페이스북이 10대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고, 가짜뉴스 제어장치를 도입했다가 사회적 감시가 소홀해지자 뒤로 물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독과점 완화를 위해 페이스북을 분할하자는 움직임도 일었지만,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과 와츠앱까지 수중에 넣고 ‘소셜미디어 제국’을 일궜다.
머스크는 스스로 ‘언론자유 최대주의자’라고 주장하며 대의를 위해 트위터를 산다고 했다. 하지만 막대한 돈을 빌려 인수하기에 이윤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희생시킬 동기가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그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자료에서 지난해 50억달러였던 매출을 2028년에 264억달러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머스크는 그때까지 사용자 수 역시 지금보다 4배 이상 많은 9억3100만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콘텐츠 규제가 많이 느슨해져야 한다. 머스크 손에 들어간 트위터가 상장폐지되고 개인회사가 되면 공공적 개입은 더 어려워진다.
기존 미디어 영역에서도 억만장자들의 장악력 강화는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게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많은 신문·방송을 소유한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이다. 그가 소유한 <폭스 뉴스>는 미국 정치·사회의 양극화와 혐오를 부추기는 대표적 매체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올드 미디어’ 영역에서는 2위 부자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2013년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우주개발 등을 놓고 경쟁하며 사이가 껄끄러운 1·2위 억만장자의 신경전은 미디어 쪽에서도 이어졌다. 베이조스는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소식에 “중국 정부가 공론장에 약간의 지렛대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 테슬라의 중국 사업이 트위터를 중국의 ‘여론 공작’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 인수가 언론자유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워싱턴 포스트> 칼럼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는 항상 웃긴다”고 반응했다.
머스크는 13일 스팸 또는 가짜 계정 수가 5% 미만이라는 트위터의 발표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며 인수 절차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곧바로 인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최종 인수금액을 놓고 줄다리기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가 현실화한다면 ‘경제력’과 ‘미디어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추세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 어떤 내용의 정보를,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유통시킬지 통제하는 틀을 단 몇 사람이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반명예훼손연맹 회장 그린블랫은 “머스크와 저커버그라는 단 두 사람이 공론장을 근본적으로 통제한다는 점은 매우 곤란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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