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전세 보증금이 주택 매매가의 90% 이하인 경우에만 전세금 반환 보증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전세 보증금이 집값의 100%까지 되어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무자본 갭투자’를 무차별적으로 늘리고,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기를 없애려는 조처다.
정부는 2일 4차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전세사기 피해 방지책을 발표했는데, 그것으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일자 추가 방안을 내놨다. 실제로 수도권 일대에 빌라와 오피스텔을 1139채 보유했던 주택임대사업자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10월 숨진 뒤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히는 등 현행 법과 제도들로는 풀기 어려운 전세사기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이날 오는 5월부터 전세가율이 90% 이하인 주택만 전세금 반환 보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미 전세가율이 90%를 넘는 상태에서 보증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라면, 2023년 12월31일 전까지 전세계약을 갱신하면 보증도 갱신된다. 다만 2024년 1월1일 이후 갱신 때는 90%룰이 적용되므로, 임대인과 협의해 전세가를 낮추거나 반환 보증이 되는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가입 주택 23만7800건 중에 24%인 5만7200건이 전세가율이 90%가 넘는 주택이다.
정부가 전세금 반환 보증 가입의 문턱을 높인 것은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해서다. 전세금 반환 보증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는 상품이다 . 그런데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임차인을 폭넓게 보호하고자 매매가와 전세가가 같은 경우(전세가율 100%) 까지 보증을 제공했던 점이 전세사기로 이어졌다 . 신축빌라 건축주와 분양컨설팅사는 ‘매매가(분양가)와 전세가가 같은 주택이라 자기 자본 없이 주택을 취득해 보유할 수 있다’며 바지 임대인(명의 대여자)들을 끌어 모았다 . 사기 일당과 공모한 공인중개사도 ‘매매가와 전세가가 같은 깡통 주택이라도 보증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미끼로 임차인을 안심시키고 전세 계약을 종용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른바 빌라왕 김씨의 전세보증 가입 주택의 평균 전세가율(매매·분양가격에 견준 전세가격)은 98%에 이른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전세가율 기준 조정으로 적잖은 세입자들이 보증금 보증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어 정부도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조처로 무자본 갭투자를 막을 수 있으며, 임차인들도 보증조차 제공되지 않는 전세계약은 위험계약으로 인지해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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