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139채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전세사기범들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기범들은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하다며 세입자들을 안심시킨 뒤 공모자들과 짜고 사기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가입 기준과 심사를 악용했다.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 제도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보증사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환수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공사가 지난해 임차인에게 돌려준 전세보증금은 무려 9341억원에 이른다. 전년보다 83.4%나 급증했다. 반면에 공사가 집주인에게서 회수한 금액은 2490억원에 불과했다. 그 여파로 공사마저 재무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져 자본을 수혈받아야 할 처지에 빠졌다.
이런 일이 발생한 데는 공사의 느슨한 가입 심사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한 금액을 주택가격과 동일한 수준까지 보증해주고,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50%까지 적용해 사기범들이 무자본 갭투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공시가격의 150%까지 적용했다는 것은 예를 들어 공시가격이 2억원이라면 3억원까지 시세로 쳐서 공사가 보증해줬다는 얘기다. 실제로 사기범들은 자기 돈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도 세입자의 전세금만으로 집을 매매했다. 세입자들에겐 보증보험에 들어 문제없다는 식으로 안심시켰다. 특히, 가격 산정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을 대상으로 삼아 집값을 실제보다 높게 부풀렸다. 신축 빌라는 전문적인 감정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수수료를 임차인들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어 이용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한 금액에 대해 집값의 80% 수준까지만 보증하도록 한도를 낮춰야 한다. 정부는 집값 산정 기준이 문제가 되자 지난해 11월 공시가격의 140%로 낮췄는데, 이것도 높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재검토해야 한다. 가격 산정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은 감정평가를 의무화하고, 감정평가 수수료는 공사가 부담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 무주택자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이 사기범의 먹잇감이 되고, 이들을 보호해야 할 보증 제도가 악용당하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