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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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구인 광고를 올려 가짜 집주인과 세입자를 구한 전세사기 총책인 20대 ㄱ씨는 이들의 명의를 이용해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150여회에 걸쳐 은행 9곳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95억원을 챙겼다. 가짜 세입자들은 청년전세자금 대출 대상자인 20대가 많았다. ㄱ씨는 일부 시중은행이 청년전세자금 대출을 심사할 때 보증보험에 가입된 경우 은행 앱에서 비대면으로 전세계약서만 본다는 점을 노렸다. 명의를 빌려준 이들은 대출받은 전세자금의 10%가량을 대가로 챙겼다. ㄱ씨 등은 대출 심사 과정에서 변심을 우려해 일부 가담자를 모텔에 감금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기 등 혐의로 ㄱ씨 등 13명을 구속하고, 명의대여자 등 91명을 입건했다.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불리는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경찰이 6개월 동안(2022년 7월25일~지난달 24일)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허위 전세계약서로 전세자금을 가로챈 ‘허위 보증·보험’ 유형이 전세사기의 절반 이상(55.3%)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빌라왕’의 수법인 ‘무자본 갭투자(14.6%)’는 그 뒤를 이었다.
2일 경찰청이 발표한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 결과’를 보면 허위 전세계약서로 수백억원의 전세자금을 가로챈 전국 15개 조직의 총책 등 주범 85명이 구속됐고, 가담자 600여명과 공인중개사 37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직접 혹은 ‘바지’ 명의자를 내세워 조직적으로 다수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보증금이나 리베이트를 가로챈 ‘무자본 갭투자’와 관련해서는 전국적으로 6100여채를 보유한 6개 조직을 검거해 14명을 구속하고, 가담자 350여명을 입건했다. 김현수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계장은 “전세사기하면 빌라왕이 먼저 떠오르지만, 전세자금 대출을 허위로 받아 가로챈 사례가 무자본 갭투자보다 검거 비율이 높았다. 시중은행 대출이 비대면으로 가능하고, 신속하게 입금되는 점 등을 악용해 전국적으로 유행한 수법”이라고 말했다.
피의자 신분별로는 가짜 임대인·임차인이 867명으로 전체 전세사기 피의자의 44.7%에 달했다. 이어 공인중개사·중개보조원(373명·19.2%), 임대인·소유자(325명·16.8%), 부동산컨설팅업자 등 브로커(228명·11.7%) 등 차례였다.
특별 단속 기간 전체 전세사기 검거인원과 구속인원 모두 급증했다. 경찰청은 이 기간 동안 모두 1941명(618건)을 검거해 168명을 구속했는데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에 견줘 검거인원은 8배(243명), 구속인원은 15배(11명) 증가한 것이다.
송치된 사건을 기준으로 피해자는 1207명에 달했고, 피해금액은 2335억원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연령별로는 20대(18.5%)와 30대(31.4%)가 50%에 육박했다. 1인당 피해금액은 1∼2억원이 37.5%(453명)로 가장 많았고, 2∼3억원이 23.6%(285명)를 차지해 주로 서민층에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주택유형별로는 빌라가 68.3%(824명)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오피스텔 17.1%(206명), 아파트 12.0%(145명), 단독주택 2.6%(32명) 등 차례로 많았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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