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리나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시작을 공식 통보했다. 우리 정부는 “개정협상 개시에 ‘합의’한 것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미국 쪽 요구가 거세 사실상 협상은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2일(현지시각) 발표한 성명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협정의 개정 필요성을 검토하는 협상 과정의 시작을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를 요구한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달 워싱턴에서 한-미 공동위 특별회의를 개최하자고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당당하게 임하되 모든 가능성을 예단하지 말고 열어두고 준비하라”고 말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2015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283억달러인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없었다면 그 수치가 44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미국 쪽 분석도 있다”며 “그 영향에 대해 양국이 공동으로 면밀하게 조사·분석·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정책국장도 기자브리핑에서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꼭 협정 개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미국 쪽이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12일 만에 내놓은 특별회의 개최 요구에 우리 정부는 개최 시점을 늦추자는 입장이다. 협상 파트너인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이란 점을 들어서다. 하지만 미국이 보낸 서한에 주형환 산업부 장관을 적어 협상 상대가 있다는 점을 시사해 우리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회의가 열리면 즉각 협상 개시를 요구하는 미국 쪽과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을 먼저 따지는 우리 쪽 주장이 맞설 전망이다.
정부는 개정협상에 ‘합의’한 것은 아니라지만, 그동안 공들여온 ‘트럼프 달래기’에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려고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을 늘린 것은 물론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방미 수행경제인단이 향후 5년간 약 40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구매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국제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에 셰일가스 수입과 현지 투자를 주었지만 미국은 개정 요구 통지서를 보낸 격”이라며 “이번 개정협상 역시 미국의 최종적 요구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노련한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에 처음부터 잘못 대응했다는 분석도 있다. 자유무역협정은 방대한 영역에서 관세를 철폐하고 시장을 개방해 서로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문에 ‘기득권을 위한 협정’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존 논의와 전혀 다른 무역수지 적자를 앞세워 “끔찍한 협정”이라고 비난하는 등 독특한 무역정책을 선보였다. 향후 펼쳐질 개정협상도 개방 수준을 논의하는 대신 양국간 무역수지 숫자를 두고 다투는 ‘기이한’ 형태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자는 “트럼프의 새 무역정책은 국제적 규율과 질서는 무시하고 오로지 미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무역 질서를 끌고 가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려는 노력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안겨준 대미 투자 선물도 성급했고, 방향 설정도 틀렸다는 지적이다.
조계완 이세영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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