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경기 과청 정부청사 법무부에서 이귀남 장관이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사면을 발표하고 있다. 과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건희 사면 관철시킨 ‘삼성의 힘’
9월 최지성 전자 사장 ‘오너체제 필요성’ 거론
11월부터 잇단 사면건의…법무장관 “신속검토”
9월 최지성 전자 사장 ‘오너체제 필요성’ 거론
11월부터 잇단 사면건의…법무장관 “신속검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사면 결정 과정은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흘러왔다. 체육계가 바람을 잡자 재계와 정치권이 추임새를 넣었고, 일부 언론이 멍석을 깔자 청와대가 최종 재가를 했다. 결국 ‘삼성의 힘’이 은밀한 구명 로비와 치밀한 여론전을 통해 관철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맨 처음 운을 뗀 건 삼성그룹 사장단들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9월 독일 가전전시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건 이건희 회장님 덕분이다. 오너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삼성이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오너 경영’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최 사장은 이 전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최측근 인사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권오현 사장도 같은 달 대만 출장길에 “삼성뿐 아니라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도 전임 회장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오너 체제로의 복귀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자연스레 그 전제가 되는 사면론에 불씨를 지핀 셈이다. 구체적인 움직임은 지난달 시작됐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11월19일)를 시작으로 체육계는 물론 재계와 정치권에서 공식·비공식적인 사면 건의가 쏟아졌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11월20일)고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고,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업인의 사기 측면에서 사면이 긍정적으로 검토됐으면 좋겠다”(11월24일)고 말했다.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선처를 베풀어도 국익에 그리 나쁘지 않을 것”(12월11일)이라고 호응했다. 체육계와 재계 단체 수장들이 총대를 메고, 정부와 정치권이 지원사격에 나선 모양새다. 이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각계의 사면 건의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사면 논의를 공식화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이 전 회장을 포함한 78명의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정식 건의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청와대와 여당 안에서도 친재벌·특혜 시비 등을 이유로 사면 불가론이 제기됐음에도 마치 정해진 각본이 있는 듯 재계와 정치권, 일부 언론이 사면론을 확대·재생산했다”며 “삼성이 치열하고 은밀하게 로비를 하고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 전 회장의 사면이 결정된 과정에 대해 “삼성 밖에서 이뤄진 움직임”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지난 9월께부터 ‘삼성이 이 전 회장 사면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성탄절 특사가 무산된 뒤에도 내년 1월1일, 설날 또는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돌 등에 맞춘 사면·복권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 올림픽 유치 조건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금이 적기이고 평창 외에는 명분이 없다’는 의견이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림픽 유치 여부가 확정되는 건 1년6개월 뒤인데, 그 정도 시간이면 실패에 따른 부담도 희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정부와 삼성의 ‘빅딜설’도 파다하다. 삼성이 바이오 사업 등의 세종시 입주와 이번 사면을 주고받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이번 사면은 국익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결국 삼성 뜻대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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