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외 대책 현황과 과제
은행 공익성 잣대로 인센티브 부여 필요
평가결과 공개해 금융사간 자율경쟁 유도
서민·대안 금융기관 활성화 정부 나서야 국내에서 금융소외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최근 2~3년 사이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빚으로 빚을 갚는 금융소외 계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는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카드사태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국내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수익성 위주 경영, 대부업체 난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법으로 명시하고 대안 금융기관을 활성화하는 등 정부와 금융권이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은행 공공성, 법으로 명시하자”=무엇보다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수익성뿐 아니라 공공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현재 국회에는 ‘서민금융 및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법안’(심상정 의원), ‘금융기관의 공익성에 관한 법안’(이원영 의원) 등 한국판 지역재투자법(CRA)이라고 할 수 있는 법안이 네 개나 발의돼 있다. 법안의 내용들은 미국 지역재투자법처럼 금융감독당국이 지역사회나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 비율 등 은행의 공익적 활동을 평가한 뒤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표하고 이를 금융기관 업무 인허가 때 반영하자는 것이다. 은행권과 정부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안일태 상무는 “은행의 공익적 활동은 은행 자율에 맡겨야지 법으로 강제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법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것”이라며 “아직 은행들의 수익구조나 경쟁력도 탄탄하지 않아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과)는 “시장 자율에 맡겨놓으면 기업 속성상 수익성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법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지역·저소득층 서비스에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영 의원실의 조만호 보좌관은 “은행들은 자체 판단으로 공익활동을 하되, 활동에 대한 평가 결과를 알려 국민이 판단하게 하고 업무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인센티브로는 시금고를 선정할 때 지역공헌 은행에 이익을 주거나 외국 진출 인허가 때 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감독당국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지 현재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이른바 ‘서민금융기관’들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이들은 카드사태 당시 부도 위기에 몰린 경험 때문에 서민 신용대출을 거의 하지 않고 주택담보대출이나 부동산사업에만 매달려왔다. 금감위는 2일 이들 기관의 서민 소액신용대출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상정 의원은 5조원의 재정과 금융기관 출연금으로 서민금융기금을 만들어 서민 신용대출을 지원하는 내용의 ‘서민금융기금법안’을 이달 중에 발의할 예정이다. ■ 대안금융기관 활성화 필요=제도권 금융기관의 금융서비스가 미치기 힘든 저신용자, 저소득층 계층을 위한 대안 금융기관 활성화도 주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소득층의 창업 자금을 무담보로 대출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대안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원책도 마련되고 있다. ‘사회투자재단’과 ‘휴면예금관리재단’이 각각 이달 안, 내년 초까지 만들어져 국내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에 자금을 지원해줄 예정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이사는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너무 단기간에 사회적 조명을 받고 내년에는 자금지원까지 확대되면서 무자격 기관들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며 “인력 충원, 심사·교육 매뉴얼 정립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의 제한적 수신 허용 등 장기적인 자금조달 방안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국가가 나서 대안적인 서민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사회책임연대은행법안’(박재완 의원)과 ‘서민은행법안’(심상정 의원)은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 대안 은행을 설립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대선후보도 최근 발표한 ‘금융소외 해소 공약’을 통해 소액 서민대출 은행을 전국 광역시 및 도청 소재지에 하나씩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송태경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은 “현행 학자금·의료비 대출제도를 좀 더 확대해 저소득층의 ‘급전’ 수요를 정부가 일부 흡수해 줘야 한다”며 공적 금융의 강화를 주장했다. 현재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빈곤층 자산형성 지원사업을 본격화하고, 영국처럼 저소득층 전담 금융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해 금융이 또 하나의 양극화 경로가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끝>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서민·대안 금융기관 활성화 정부 나서야 국내에서 금융소외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최근 2~3년 사이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빚으로 빚을 갚는 금융소외 계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는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카드사태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국내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수익성 위주 경영, 대부업체 난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법으로 명시하고 대안 금융기관을 활성화하는 등 정부와 금융권이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은행 공공성, 법으로 명시하자”=무엇보다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수익성뿐 아니라 공공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현재 국회에는 ‘서민금융 및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법안’(심상정 의원), ‘금융기관의 공익성에 관한 법안’(이원영 의원) 등 한국판 지역재투자법(CRA)이라고 할 수 있는 법안이 네 개나 발의돼 있다. 법안의 내용들은 미국 지역재투자법처럼 금융감독당국이 지역사회나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 비율 등 은행의 공익적 활동을 평가한 뒤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표하고 이를 금융기관 업무 인허가 때 반영하자는 것이다. 은행권과 정부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안일태 상무는 “은행의 공익적 활동은 은행 자율에 맡겨야지 법으로 강제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법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것”이라며 “아직 은행들의 수익구조나 경쟁력도 탄탄하지 않아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과)는 “시장 자율에 맡겨놓으면 기업 속성상 수익성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법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지역·저소득층 서비스에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영 의원실의 조만호 보좌관은 “은행들은 자체 판단으로 공익활동을 하되, 활동에 대한 평가 결과를 알려 국민이 판단하게 하고 업무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인센티브로는 시금고를 선정할 때 지역공헌 은행에 이익을 주거나 외국 진출 인허가 때 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감독당국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지 현재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이른바 ‘서민금융기관’들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이들은 카드사태 당시 부도 위기에 몰린 경험 때문에 서민 신용대출을 거의 하지 않고 주택담보대출이나 부동산사업에만 매달려왔다. 금감위는 2일 이들 기관의 서민 소액신용대출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상정 의원은 5조원의 재정과 금융기관 출연금으로 서민금융기금을 만들어 서민 신용대출을 지원하는 내용의 ‘서민금융기금법안’을 이달 중에 발의할 예정이다. ■ 대안금융기관 활성화 필요=제도권 금융기관의 금융서비스가 미치기 힘든 저신용자, 저소득층 계층을 위한 대안 금융기관 활성화도 주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소득층의 창업 자금을 무담보로 대출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대안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원책도 마련되고 있다. ‘사회투자재단’과 ‘휴면예금관리재단’이 각각 이달 안, 내년 초까지 만들어져 국내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에 자금을 지원해줄 예정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이사는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너무 단기간에 사회적 조명을 받고 내년에는 자금지원까지 확대되면서 무자격 기관들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며 “인력 충원, 심사·교육 매뉴얼 정립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의 제한적 수신 허용 등 장기적인 자금조달 방안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국가가 나서 대안적인 서민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사회책임연대은행법안’(박재완 의원)과 ‘서민은행법안’(심상정 의원)은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 대안 은행을 설립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대선후보도 최근 발표한 ‘금융소외 해소 공약’을 통해 소액 서민대출 은행을 전국 광역시 및 도청 소재지에 하나씩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송태경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은 “현행 학자금·의료비 대출제도를 좀 더 확대해 저소득층의 ‘급전’ 수요를 정부가 일부 흡수해 줘야 한다”며 공적 금융의 강화를 주장했다. 현재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빈곤층 자산형성 지원사업을 본격화하고, 영국처럼 저소득층 전담 금융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해 금융이 또 하나의 양극화 경로가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끝>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