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득 수준 하위 20% 계층의 대출 실태
상담에서 대출 알선까지 ‘맞춤형’ 서비스
할인점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서른살의 싱글맘 마가렛. 그는 틈틈이 ‘프라이빗뱅커(PB)’를 찾는다.
얼마 전 그는 급전을 구하느라 대부업체 여러 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민상담센터’(Citizen Advice Center)란 곳을 알게 된 그는 지역의 신용협동조합을 소개받아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필요한 액수의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상담에서 대출 알선까지 모든 서비스가 원스톱으로 이뤄졌지만, 그 대가로 한푼도 내지 않았다.
마가렛은 영국 정부가 2004년 출범시킨 저소득층 대상 맞춤형 금융교육·상담·정보망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올 4월 말 현재 정부에 등록된 금융상담 인력은 모두 500여명. 이들은 전국 100여 곳에 있는 금융상담단체에 소속돼, 저소득층 전담 프라이빗뱅커 노릇을 한다. 정부는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드는 예산 4750만 파운드(855억원)를 모두 댔다. 지금까지 이 서비스를 누린 사람만 2만명을 족히 넘는다.
이 서비스는 영국 정부가 2004년부터 시작한 ‘금융 소외 해소(Financial Inclusion)’ 프로젝트의 대표적 결실 가운데 하나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정부는 재무성 안에 금융소외 대책팀을 만들고, 민간전문가 30여명으로 이뤄진 별도의 태스크포스(TF)도 꾸려 자문을 하도록 했다. 에밀 레벤도글 금융소외 대책팀장은 “금융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금융소외도 덩달아 심각해진다”면서 “금융소외 문제는 사회정의뿐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우선 은행계좌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계좌(basic account)를 터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기본계좌란 입출금을 비롯해 직불카드 이용 등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계좌를 말한다. 이 계좌 주인들에겐 처음부터 송금이나 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가 면제됐다.
하나둘씩 성과가 쌓이면서, 애초 올해 3월까지였던 태스크포스의 활동 기간도 2010년까지 3년 더 연장됐다. 대책의 목표 역시 단순한 금융서비스 이용을 보장하는 데서 벗어나 소득과 신용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필요한 재원에 최대한 접근할 수 있는 권리까지로 확대됐다. 1억2천만 파운드 규모의 ‘금융 소외해소 기금’도 새로이 조성됐다.
저소득층 전담 금융교육·상담·정보망도 더욱 촘촘해졌다. 영국 정부의 통계를 보면, 마가렛처럼 전문상담기관을 거친 사람들일수록 무턱대고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업자들을 찾아가는 사람에 비해 빚 부담에서 벗어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상담기관을 거친 사람 가운데 2년 안에 빚을 터는 경우는 26%, 3년 안에는 46%가 채무관계를 청산했다. 이들 기관은 불법 사채업자한테서 피해를 입은 저소득층을 대신해 법적 절차를 밟아주기도 했다.
금융소외를 없애기 위한 발걸음은 금융시장 한복판에서도 한창이다. 런던 커내리워프는 뉴욕 맨하탄을 누르고 새로이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떠오른 곳이다. 에이치에스비시(HSBC), 바클레이즈 등 이 곳에 본사를 둔 글로벌 은행들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담당하는 부서와는 별도로 금융소외 문제에 대처하는 조직을 꾸리고 있다.
영국은행협회(BBA)의 브리안 카폰 이사는 “처음엔 은행들도 금융소외 문제에 거리를 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략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며 “금융에서 소외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궁극적으론 금융시장 자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은행들 스스로 깨달은 결과”라고 말했다. 이들 메이저 금융기관은 저소득층에 스며드는 돈줄 노릇도 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이나 마이크로크레딧 기관 등 영국내 400여 개 지역개발금융기관(CDFIs)들은 은행으로부터 낮은 이자에 자금을 꿔와 저소득층 대출 재원으로 쓰고 있다. 정부는 이들 기관에 돈을 꿔준 은행들에게 5%의 세제 혜택을 준다. ‘금융소외 제로(0) 플랜’을 차근차근 진행시켜가는 영국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다. 런던/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휴면예금으로 은행 만드는 중” ‘15년 이상 49파운드이하’ 기준…수익보다 사회가치 우선
짐 길번 자선은행 사무총장
영국에서도 요즘 휴면예금 처리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사회투자은행’을 설립해 금융소외 해결에 나서자는 게 골자다. 올 하반기로 예정된 사회투자은행 설립 움직임은 영국의 대표적인 공익 금융기관인 자선은행(Charity Bank)이 이끌고 있다.
- ‘은행’ 이름을 사용해도 되나?
= 자선은행은 영국 금융감독청(FSA)의 감독을 받는 은행법상의 정식 은행이다. 다만 하는 일이 보통 은행과 다를 뿐이다.
- 자선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수익성보다는 다른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예금이자를 거의 쳐주지 않는데도 우리 은행 예금자가 1300명이 넘는다. 대출금리는 2% 정도 된다.
- 휴면예금 활용 방안에 대해 반대는 없나?
= 처음엔 은행들도 거부감이 많았다. 소비자단체들을 설득하는 일도 어려운 과제였다. 최대한 원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영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잠자는 돈 찾아가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와 관련있다.
- 휴면예금의 기준은 어떻게 정리됐나?
= 국민들 상대로 일정 기간 찾아가지 않는 예금을 휴면예금으로 해야할지를 놓고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10년이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15년으로 정리되고 있다. 기준 잔액도 49파운드(9만5천원)선에서 결정될 것 같다.
- 금융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조언할 게 있다면?
= ‘제3부문’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영국엔 에이치에스비시같은 대형 은행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지역에 뿌리를 둔 소규모 협동조합이나 금융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대형 은행들이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금융부문 전체가 골고루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금융 자체도 훨씬 안정되고 튼튼해진다. 런던/ 최우성 기자
영국은행협회(BBA)의 브리안 카폰 이사는 “처음엔 은행들도 금융소외 문제에 거리를 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략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며 “금융에서 소외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궁극적으론 금융시장 자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은행들 스스로 깨달은 결과”라고 말했다. 이들 메이저 금융기관은 저소득층에 스며드는 돈줄 노릇도 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이나 마이크로크레딧 기관 등 영국내 400여 개 지역개발금융기관(CDFIs)들은 은행으로부터 낮은 이자에 자금을 꿔와 저소득층 대출 재원으로 쓰고 있다. 정부는 이들 기관에 돈을 꿔준 은행들에게 5%의 세제 혜택을 준다. ‘금융소외 제로(0) 플랜’을 차근차근 진행시켜가는 영국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다. 런던/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휴면예금으로 은행 만드는 중” ‘15년 이상 49파운드이하’ 기준…수익보다 사회가치 우선
짐 길번 자선은행 사무총장
짐 길번 자선은행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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