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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② 국내기업 경영권 승계 실태

등록 2006-05-16 18:25수정 2006-05-18 10:15

주요 재벌그룹의 경영승계 현황
[재벌상속 변화 급물살]
순환출자·비상장사 인수로 대물림 구축

대안 떠오른 지주회사 체제도

재벌체제 확대 재생산에 이용

삼성·신세계 등 몇몇 재벌기업들이 경영권 승계 투명화를 밝히고 나섰지만 많은 국내 기업들은 총수 일가의 편법상속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몇 차례 상속을 거치면서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거나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현재 재벌가의 경영 대물림은 1, 2세대를 거쳐 3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분하락 순환출자로 막아=창업 110돌을 맞은 두산그룹은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조금씩 나눠 갖고 있는 ‘분산 소유형’이다. 3대 박용곤 명예회장에 이어 4대째로 내려오면서 지분이 흩어졌다. 두산산업개발의 경우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부회장이 1.14%, 박 부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이 0.75%,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아들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0.83%를 갖고 있는 데 불과하다.

기업은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친족간 지분 분산 △증자로 인한 지분율 하락 △상속세 납부에 따른 개인지분 하락 등으로 총수 일가의 지분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른 그룹 지배력 약화를 막기 위해 동원되는 방법이 순환출자다. 기업집단을 순환출자 구조로 만들어 놓으면 지분 확보가 쉬운 한 회사만 장악해도 쉽게 자식들에게 그룹 전체를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두산이다. 두산산업개발은 ㈜두산을 지배하고, ㈜두산은 두산중공업을, 두산중공업은 다시 두산산업개발을 지배한다. 동부그룹도 순환출자 방식을 이용해 경영권을 대물림한 경우다. 동부한농이 동부정밀화학을 지배하고, 동부정밀화학은 동부제강을, 동부제강은 다시 동부한농을 지배하는 구조다. 김준기 회장이 동부정밀화학의 지분 14%를, 아들 김남호씨는 21.1%를 갖고 있다. 증여세를 내고 꾸준히 사전상속(증여)을 해온 결과다. 뉴욕에서 공부 중인 김남호씨는 31살의 나이에 이미 동부그룹을 접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편법증여·상속 곳곳에=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헐값에 넘겨 부를 이전하거나 경영권을 넘겨주는 편법상속 방식은 삼성과 현대차가 시도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들뿐 아니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비상장 계열인 에스케이씨앤씨(C&C) 지분을 계열사들로부터 헐값에 사들여 에스케이㈜와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정상영 회장으로부터 3세 승계가 진행 중인 케이씨씨도 2003년 1월 차남 정몽익 사장에게 비상장사 코리아오토글라스 지분 20%를 액면가에 넘겨주면서 막대한 이득을 안겨줬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은 광주신세계를 통해 편법증여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참여연대에 의해 검찰에 고발돼 있는 상태다. 효성은 비상장사 효성건설을 통해 총수의 세 자녀에게 재산을 편법상속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은 진행형=비상장사를 이용한 편법상속과 순환출자를 통한 그룹 지배를 막기 위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지주회사 제도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신고된 회사는 31개(금융지주사 4개 포함)에 이른다. 2003년 지주회사를 설립한 엘지그룹과 지에스그룹을 비롯해 에스티엑스, 풀무원, 롯데물산 등이다.

엘지는 구본무 회장이 지주회사 지분을 10.33%, 양자로 입적된 구광모씨가 2.8% 보유하고 있다. 구광모씨가 꾸준히 지분을 사들이고 있어 지주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지에스는 허창수 회장이 지주회사 지분 5.41%를 갖고 있으며, 장남 허윤홍씨는 지난해 지에스칼텍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지에스건설 대리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2004년 말 그룹을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나눠 두 아들에게 맡겼고, 농심그룹의 신춘호 회장도 2003년 농심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들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아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한화, 코오롱, 에스케이, 두산, 롯데 등 다른 재벌기업들도 지주회사로의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화그룹은 주력사인 ㈜한화를 중심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고,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벌인 두산그룹은 ㈜두산을 3년 안에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주회사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현재의 지주회사 제도는 적은 자본으로 많은 기업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어 재벌체제를 확대시키고 영속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분상속의 투명성 못지않게 따져봐야 할 것이 경영능력이다. 재벌 2, 3세들은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없이 10년여 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 보통이다. <한겨레>가 살펴본 14개 재벌기업 3세들이 임원으로 임명된 나이는 평균 31살이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2001년 상무,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 2005년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씨제이의 경우도 2004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재현 회장의 누나 이미경씨는 95년 이사로 입사해 10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2, 3세의 초고속 승진은 다른 재벌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편법 지분승계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속 승진을 통해 경영세습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산업팀

사회환원·투명상속 기업도 있다

유한양행 지분 구조
유한양행 지분 구조
기업을 일으킨 창업자가 모두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거나 상속을 편법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박사가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은 2세 상속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인 일선씨는 한때 부사장으로 경영에 뛰어들었으나 곧 물러났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고, 관리만 기업인이 할 뿐”이라는 유 박사의 신념 때문이었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다. 평소 장학 사업에 힘을 쏟았던 유 박사는 전재산을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에 기증했다. 이에 따라 유한양행의 기업 이윤은 자연스럽게 재단과 학원으로 흘러들어가 사회공헌 활동과 교육사업에 쓰여진다.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일선씨는 회사 지분은커녕 재단의 지분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다. 유 박사의 딸 재라씨는 91년 숨기기 직전 당시 45억원어치의 유한양행 주식과 160억원대의 서울 대방동 집터 등 모두 205억원을 유한재단에 기부했다. 2대에 걸쳐 전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것이다.

유한양행 전문경영인 체제
대한전선·교보생명 유족들
1300억대 세금 성실납부

미국에서 한창 상속세 폐지 움직임이 일 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같은 거부들이 폐지 반대에 앞장선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수천억, 수조원대의 재산을 갖고도 경영권 대물림을 위해 마치 인심쓰듯 상속세를 내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국내의 일부 재벌기업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지난 2004년 3월 세상을 뜬 설원량 대한전선 전 회장의 유족들은 1355억원을 상속세로 신고해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국내 상속세 사상 최고 액수였다. 어찌보면 법적 절차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이어서 얘깃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인데도 설 전 회장 유족들의 ‘성실납부’는 변칙 상속이나 증여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다른 재벌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상속세 2위는 1338억원을 납부했던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 유족이다. 이들 기업보다 큰 규모의 재벌가라고해서 모두 편법 상속이나 증여를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교묘히 피해나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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