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상속 변화 급물살]
순환출자·비상장사 인수로 대물림 구축
순환출자·비상장사 인수로 대물림 구축
대안 떠오른 지주회사 체제도 재벌체제 확대 재생산에 이용 삼성·신세계 등 몇몇 재벌기업들이 경영권 승계 투명화를 밝히고 나섰지만 많은 국내 기업들은 총수 일가의 편법상속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몇 차례 상속을 거치면서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거나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현재 재벌가의 경영 대물림은 1, 2세대를 거쳐 3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분하락 순환출자로 막아=창업 110돌을 맞은 두산그룹은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조금씩 나눠 갖고 있는 ‘분산 소유형’이다. 3대 박용곤 명예회장에 이어 4대째로 내려오면서 지분이 흩어졌다. 두산산업개발의 경우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부회장이 1.14%, 박 부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이 0.75%,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아들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0.83%를 갖고 있는 데 불과하다. 기업은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친족간 지분 분산 △증자로 인한 지분율 하락 △상속세 납부에 따른 개인지분 하락 등으로 총수 일가의 지분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른 그룹 지배력 약화를 막기 위해 동원되는 방법이 순환출자다. 기업집단을 순환출자 구조로 만들어 놓으면 지분 확보가 쉬운 한 회사만 장악해도 쉽게 자식들에게 그룹 전체를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두산이다. 두산산업개발은 ㈜두산을 지배하고, ㈜두산은 두산중공업을, 두산중공업은 다시 두산산업개발을 지배한다. 동부그룹도 순환출자 방식을 이용해 경영권을 대물림한 경우다. 동부한농이 동부정밀화학을 지배하고, 동부정밀화학은 동부제강을, 동부제강은 다시 동부한농을 지배하는 구조다. 김준기 회장이 동부정밀화학의 지분 14%를, 아들 김남호씨는 21.1%를 갖고 있다. 증여세를 내고 꾸준히 사전상속(증여)을 해온 결과다. 뉴욕에서 공부 중인 김남호씨는 31살의 나이에 이미 동부그룹을 접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편법증여·상속 곳곳에=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헐값에 넘겨 부를 이전하거나 경영권을 넘겨주는 편법상속 방식은 삼성과 현대차가 시도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들뿐 아니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비상장 계열인 에스케이씨앤씨(C&C) 지분을 계열사들로부터 헐값에 사들여 에스케이㈜와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정상영 회장으로부터 3세 승계가 진행 중인 케이씨씨도 2003년 1월 차남 정몽익 사장에게 비상장사 코리아오토글라스 지분 20%를 액면가에 넘겨주면서 막대한 이득을 안겨줬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은 광주신세계를 통해 편법증여를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참여연대에 의해 검찰에 고발돼 있는 상태다. 효성은 비상장사 효성건설을 통해 총수의 세 자녀에게 재산을 편법상속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은 진행형=비상장사를 이용한 편법상속과 순환출자를 통한 그룹 지배를 막기 위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지주회사 제도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신고된 회사는 31개(금융지주사 4개 포함)에 이른다. 2003년 지주회사를 설립한 엘지그룹과 지에스그룹을 비롯해 에스티엑스, 풀무원, 롯데물산 등이다. 엘지는 구본무 회장이 지주회사 지분을 10.33%, 양자로 입적된 구광모씨가 2.8% 보유하고 있다. 구광모씨가 꾸준히 지분을 사들이고 있어 지주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지에스는 허창수 회장이 지주회사 지분 5.41%를 갖고 있으며, 장남 허윤홍씨는 지난해 지에스칼텍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지에스건설 대리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2004년 말 그룹을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나눠 두 아들에게 맡겼고, 농심그룹의 신춘호 회장도 2003년 농심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들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아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한화, 코오롱, 에스케이, 두산, 롯데 등 다른 재벌기업들도 지주회사로의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화그룹은 주력사인 ㈜한화를 중심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고,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벌인 두산그룹은 ㈜두산을 3년 안에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주회사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현재의 지주회사 제도는 적은 자본으로 많은 기업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어 재벌체제를 확대시키고 영속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분상속의 투명성 못지않게 따져봐야 할 것이 경영능력이다. 재벌 2, 3세들은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없이 10년여 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 보통이다. <한겨레>가 살펴본 14개 재벌기업 3세들이 임원으로 임명된 나이는 평균 31살이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2001년 상무,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 2005년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씨제이의 경우도 2004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재현 회장의 누나 이미경씨는 95년 이사로 입사해 10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2, 3세의 초고속 승진은 다른 재벌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편법 지분승계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속 승진을 통해 경영세습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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