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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④ 경영권 승계 전문가 진단

등록 2006-05-18 20:46수정 2006-05-18 21:30

[재벌상속 변화 급물살] 정당한 절차 거쳐 재벌 폐해 걷어내야
재벌기업들은 재산 상속을 경영권 승계와 동일시한다. “내 회사니까 당연히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경영권은 상속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다. 주주들로부터 경영을 위임받은 권한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다면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하든 전문경영인이 넘겨받든 문제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주주들의 동의와 경영 승계 과정의 투명성이다.

현재 재벌기업들의 경영권 승계 과정은 투명하지 않다. 그 해법과 관련해서는 입장이 나뉜다. 재벌기업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영권 안정을 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반 주주와 자본시장의 견제가 있어야 투명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재계에서 나오고 있는 상속세 인하 논란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문제는 총수 일가가 기업집단을 사적 기업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강하다. 경영권 대물림의 동기를 없애지 않고서는 재벌 문제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벌 문제를 연구해온 두 전문가에게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끝>


경영권은 개인의 재산권이 아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


상장 기업은 개인 기업이라기보다 공적인 회사이기 때문에 총수 일가의 경영권 대물림은 부적절하다. 주주를 비롯해 많은 이해관계자로부터 지지와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아야지, 총수의 아들이라고 경영권을 넘겨줘서는 안된다. 경영권은 기본적으로 재산권이 아니다. 따라서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말이다.

총수 일가가 4분의 1 이상 지분을 갖고 있다면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자기 책임 아래 직접 경영이 가능하다. 신세계 같은 경우다. 삼성처럼 총수 일가가 5%밖에 안 갖고 있고 기업 규모가 커서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경우에는 지배주주가 차기 경영자를 지명한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다. 가족 중에서 지명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미국은 1920년대 이미 지분 분산이 이뤄졌다. 주로 기술자들이 창업했고, 금융자본이 합류하면서 사업이 커져 대기업화하는 길을 걸어왔다. 창업자가 은퇴하면서 지분이 금융회사 등으로 넘어갔고, 금융회사는 주가가 오른 뒤 주식을 일반에 매각해 지배주주가 없어지게 됐다. 이로 인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갖춰지게 됐고, 지배주주보다는 오히려 전문경영인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발전했다.

유럽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지배주주가 있다. 독일은 지배주주 2~3 가족이 회사를 공동지배하거나 이해관계가 없는 서로 다른 기업이 상호출자를 통해 우호세력을 확보하거나 상호견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지배주주는 이사회 의장과 전문경영인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다. 15~20%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재벌 총수들보다 지분은 훨씬 많지만 기업에 대한 영향력은 훨씬 적게 행사한다.

미국은 전문경영인 체제 유럽은 상호견제 시스템
총수 사익추구로 생기는 경영권 프리미엄 없애야

미국의 경우 카네기와 록펠러는 자기 지분을 내놓고 재단을 만들어 공익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은 경영권을 내놓을 때 자기 주식을 기관투자자들에게 시장가격으로 팔았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프리미엄이 없다는 것은 총수가 전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이익을 취할 여지가 없으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줄어든다. 한국 기업들도 부조리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없애야 한다.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 이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없애 총수가 전횡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지배주주가 있고 계열사들이 순환출자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기 어렵다. 사외이사의 한계도 명확하다. 계열사간 출자로 이뤄진 소유 구조 때문에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 봉쇄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예컨데 글로비스에 현대차의 물량을 몰아줬다면 손해를 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주주들이 그렇게 못하도록 하고, 또 제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힘들다. 정부가 도입하겠다고 밝힌 이중대표소송을 도입하면 가능하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의 적용 범위도 지금보다 넓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주주 이익을 지키는 전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하지만 현실을 보면 대형 증권사가 대부분 재벌 계열사들이고, 또 재벌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어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재벌기업의 금융산업 진출을 막고 기관투자자들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일반 주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


공익재단 설립 사회기여 유도 필요

정승일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

재벌의 편법적인 경영권 상속은 에버랜드를 이용한 삼성과 글로비스를 이용한 현대차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세법을 위반하고 ‘회사 기회를 편취하는’ 범죄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재벌들의 상속이 평범한 일개 가족의 재산상속이 아니라 기업집단의 경영권 승계라는 점에서 발생한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법대로 상속세를 부과할 경우 그 만큼 총수일가의 기업지배력이 약화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상당수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그룹체제를 일부 해체해야 한다. 신세계는 상속세를 다 낸다하더라도 지분구조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삼성은 굉장히 취약하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상속세를 내고 지분이 없어지면 그룹 해체로 이어질텐데 그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 재벌은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한국 경제를 이끄는 동력이다. 기업집단의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 재벌기업이 잘못되면 국민경제가 입을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재벌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상속세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사회보장이 핵심이다. 상속세만 논하지 말고 조세체계를 전반적으로 뜯어고쳐 사회보장 확대를 꾀해야 한다. 사실 전체 조세수입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2% 밖에 안된다.

법대로 상속세 부과하면 그룹해체로 경제에 도움안돼
지주회사 역할 맡겨서 지배구조 투명성 높이도록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함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대폭 허용된 현재의 조건에서 최우량 기업들의 지배주주 약화는 기업사냥 펀드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재벌가족의 편법상속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함과 동시에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새로운 해법이다.

재벌들에게 공익재단을 만들어 대주주 역할을 하게 하고 국민기업화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재단 운영의 투명성이 전제가 돼야 한다. 공익이사를 세우고 회계장부를 공개하며 재단의 수익 일체가 공익적 목적에 사용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스웨덴의 발렌베리식 해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렌베리 재단의 자산은 대부분 발레베리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의 주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발렌베리 재단은 인베스터가 지불하는 배당수익을 주된 재원으로 사회공헌과 학문지원 등 공익적 임무를 수행한다. 발렌베리식 해법을 한국에 적용할 경우 여러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벌들에게 상속세 50%를 내든지, 그것이 싫으면 공익재단에 헌납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조세정의를 지킬 수 있다.

그 공익재단이 해당 기업집단의 지주회사 또는 유사 지주회사의 핵심주주가 되도록 함으로써 그룹 지배구조의 안정화를 달성할 수 있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공익재단이 대주주로 참여함으로써 기업 지배구조의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다. 이 경우 총수 가족은 재단 이사회에 명예직으로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의 명예를 지킬 수 있다.

개방된 자본시장 아래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것이 국민경제와 기업에 바람직한지 아니면 기업 지배권 방어장치 마련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변동으로 인한 혼란과 국민경제에 주는 충격을 막기 위한 논의도 해야 한다. 지주회사 체제는 재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업집단 체제를 유지하면서 현재 법체계에서 투명성 높이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임종진, 김태형 기자 step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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