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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③ 국외 유명기업 경영권 승계

등록 2006-05-18 10:20수정 2006-05-18 10:29

[재벌상속 변화 급물살] 능력 없으면 자식도 대물림 못받는다

밀레, 포드, 발렌베리….

100년 넘게 대주주 중심의 경영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국내에서 경영 세습에 집착하는 재벌기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이들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좋은 편이다. 사회적 책임경영을 하면서 국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 재벌기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견제와 균형의 경영 원칙에 그 비결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미국, 유럽 어디를 봐도 자식이라고 해서 경영권을 자동적으로 물려주는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밀레는 세계 프리미엄 가전시장을 이끌고 있는 독일의 전형적인 가족경영 기업이다. 107년 동안 밀레와 진칸이란 두 집안에서 4대째 공동경영을 하고 있다. 이 기업이 주목받는 것은 까다로운 후계자 선출 제도와 특정 가문의 전횡을 방지하는 독특한 운영체제 때문이다. 두 가문은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한 집안이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과 영업 부문의 대표를 따로 맡고 있다. 두 가문의 자녀라고 해서 누구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밀레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일단 양쪽 가문의 예비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두 가문의 후손 가운데 수십명이 경합을 벌이게 되는데, 최종 후보군에 오를 경우 4년 이상 다른 회사에 입사해 경영의 실무수련을 쌓게 된다. 이 관문을 거치면 6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업무능력 시험을 본 뒤 마지막으로 면접을 봐야 한다.

안규문 밀레코리아 사장은 “투명하고 엄격한 검증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질과 경영능력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시험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회사를 공동으로 이끌고 있는 4대손 마르쿠스 밀레와 라인하드 진칸 역시 지난 2002년 후계자 선정 절차를 거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밀레 회장은 100년 넘게 공동경영을 유지해온 비결을 “투명경영과 무차입을 기반으로 한 튼튼한 재무구조”에서 찾았다.

1903년 헨리 포드가 세운 포드자동차는 4세대인 빌 포드 회장까지 103년을 이어 오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가족경영 기업이다. 하지만 포드는 경영세습에 머물지 않고 경영능력을 앞세운 다양한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지난 79년 포드 일가는 경영이 악화되자 경영권을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2001년 포드 4세가 다시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기까지 22년 동안 전문경영 체제를 유지한 것이다. 포드 일가가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은 제왕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사회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영입’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전임 전문경영인의 사업확장 전략으로 인해 경영 실적이 악화되던 도중에 터진 타이어 리콜 사태였다. 미국에서 포드 가문은 여전히 ‘왕조’로 인식되고 있지만 경영은 이사회가 제 목소리를 내어 견제와 균형의 매카니즘이 작동하는 구조다. 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포드의 지배구조에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너경영이든 전문경영인체제든 기업의 가치를 보전하고 높이는 일에 적합한 경영자를 찾아내는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밀레_예비심사~ 실무수련 다단계 테스트
포드_이사회 제목소리 견제와 균형 작동
발렌베리_사회적 대타협 노동자 경영참여

밀레의 경영진은 밀레와 친칸 가문의 4대손 외에 재무, 기술, 영업총괄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돼 전원합의체로 운영된다. 맨 왼쪽과 맨 오른쪽이 공동회장인 마르쿠스 밀레와 라인하르트 친칸. 밀레코리아 제공
밀레의 경영진은 밀레와 친칸 가문의 4대손 외에 재무, 기술, 영업총괄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돼 전원합의체로 운영된다. 맨 왼쪽과 맨 오른쪽이 공동회장인 마르쿠스 밀레와 라인하르트 친칸. 밀레코리아 제공
한때 삼성이 연구 모델로 삼았던 스웨덴의 발렌베리는 150년에 걸친 가족경영에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있다. 1856년 창업 이래 5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해왔지만, 1인지배 방식의 황제경영을 하는 국내 재벌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능력 있는 인사를 그룹 전체의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1997년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토 회장에 취임한 퍼시 바네빅과 2002년 취임한 클라에스 달벡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다.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시키는 것은 우리나라 재벌그룹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신규 사업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정부와도 긴밀히 협의한다. 조명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은 “민주적 의사결정체계 속에서 진행되는 경영을 통해 국민경제에 공헌하고 있기 때문에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발렌베리 가문이 지배권을 인정받고 있는 배경에는 집권 사민당 및 노동자 세력과 이뤄낸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을 바탕으로 회사 이익의 절반 이상을 내놓는 부의 환원과 사회적 연대가 크게 작용했다.

세계적으로 기업 규모가 커지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 가족경영을 하는 기업을 찾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독일의 베엠베, 일본의 도요타 등도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적 경험과 정치·사회적 배경이 달라 국내 재벌기업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계적인 기업들이 대주주 일가의 경영 참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오너경영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가문은 떠났어도 정신은 대물림

존슨가의 존슨앤드존슨 기업총수 재산 사회환원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소비자 으뜸 ‘크레도’
최고경영자 선출 잣대

117년 역사를 지닌 존슨앤드존슨은 기업 총수가 자기 재산을 공익재단에 넘기고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준 대표적인 사례다. 대주주가 없는 대신 전문경영인은 창업자의 기업정신(크레도)을 철저하게 이어간다. 최고경영자를 선출하는 방식도 출신이나 실적보다는 소비자를 으뜸으로 하는 크레도를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를 가장 우선적으로 따진다. 소비자, 종업원, 지역사회, 주주에 대한 책임의식과 행동지침을 담은 크레도는 1943년 창업자 2세인 로버트 우드 존슨에 의해 정립된 이 기업의 가치이자 신조다.

존슨앤드존슨의 창업자 2세인 로버트 우드 존슨과 그가 만든 ‘크레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크레도는 경영진 선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모든 업무 전반을 관통하는 기업신조다. 존슨앤드존슨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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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앤드존슨의 창업자 2세인 로버트 우드 존슨과 그가 만든 ‘크레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크레도는 경영진 선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모든 업무 전반을 관통하는 기업신조다. 존슨앤드존슨코리아 제공 00000000000000000000000000
1887년 미국 뉴저지에서 출발한 존슨앤드존슨도 처음에는 형제들이 설립한 가족경영 기업이었다. 맏형인 로버트 우드 존슨이 1910년 동생 제임스 우드 존슨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1932년 로버트 우드 존슨 2세가 바통을 이어받기까지 한동안 가족간의 경영 대물림이 이어졌다. 이 회사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뿌리를 내린 것은 1963년 로버트 우드 존슨 2세가 물러난 뒤 필립 호프만이 최고경영자로 선임되면서부터다. 영업사원 출신인 호프만 역시 크레도를 잘 수행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당시 존슨가는 12억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공익재단에 넘겨 세계 보건에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경영에서 손을 뗐다. 경영 대물림 대신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40년 넘게 전문경영인 체제로 내려오는 존슨앤드존슨은 10명으로 이뤄진 이사회에서 누가 더 크레도에 충실한 인물이냐를 따져 최고경영자를 뽑는 풍토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존슨가는 지분이 남아 있지도, 경영에 관여하지도 않지만 창업자 2세가 일으킨 크레도라는 기업정신으로 전통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도는 위로는 존손앤드존슨의 최고경영자를 선정하는 잣대가 될 뿐 아니라 인사정책,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의 기본원칙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업사원 출신인 윌리엄 웰든 회장도 지난 2002년 이 기준에 따라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존슨앤드존슨코리아의 문영득 인사담당 상무는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세계 57개국에 산재한 230개 자회사의 리더를 뽑을 때도 청렴과 크레도에 바탕으로 둔 행동을 해왔는가를 가장 먼저 따진다”고 말했다.

이런 전통은 회사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이 투입된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시민 7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다.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존슨앤드존슨은 크레도 정신에 따라 모든 사건경위를 언론에 공개하고 미국 전역에서 유통중인 타이레놀 전량을 2억5천만달러를 들여 수거했다. 정직하고 신속한 조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신뢰 회복으로 이어져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문 상무는 “존슨앤드존슨의 위기관리 능력 또한 소비자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신조’(크레도)에서 나온다”며 “이는 다른 어떤 가치와 충돌하더라도 타협할 수 없는 기업 고유의 가치체계”라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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