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3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탈옥수의 마지막 외마디는 록밴드 비지스의 ‘홀리데이’와 함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돈이 곧 권력이라는 세상 이치를 알려주듯, 이 외마디는 ‘유권무죄 무권유죄’로 변주되어 국민의 법 감정을 착종시켰고, ‘법보다 가까운 주먹’에 명분을 제공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법치국가를 대변하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본과 권력의 유무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자성과 자조의 목소리가 쏟아져도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만약 법조인이 범죄의 피해자라면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불편부당의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는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함부로 예단해서는 곤란하지만, 궁금함을 지우지 못하겠다. 소년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제한은 있지만, 법 집행의 당위성에 물음을 던진 넷플릭스 <소년심판>은 궁금증의 일단을 해소하기 좋은 법정드라마다. 단호한 어조로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하는 심은석(김혜수)은 소년범죄로 어린 아들을 잃고 파국에 이른 소년형사합의부 우배석 판사다. 심은석의 사례는 법조인도 법리적인 판단과 신속한 재판이라는 소년법정의 기본 원칙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심은석은 판사로서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던 중 어린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하는 법정에서 무작정 뛰쳐나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분노하고 울부짖은 것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피해자의 부모인데도 아들을 죽인 소년범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 퇴장당하고, 불과 3분 만에 내려진 판결 앞에서 참담해한다. “법이 원래 그래. 피해자라고 법이 모두를 보호해주는 건 아니니까.” 판사인 그가 다루는 법이 원래 그렇다는 말에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소년범죄에 희생당한 어린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로서의 삶이 파국에 이른 뒤, 판사로서의 직무에 충실한 심은석은 갱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년범을 혐오한다. 법률상으로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촉법소년임을 인지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범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다. 판사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소년범죄의 잔혹성에 경종을 울리는 결정을 내리면서 촉법소년 출신 판사 차태주(김무열)와 갈등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처럼 소년범죄를 대하는 그의 냉정하고 단호한 태도는 가해자의 교화를 통한 갱생에 초점을 맞춘 소년법정의 부정적 측면을 날카롭게 부각시킨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원칙에 따른 처신 때문에 내부고발자라는 부당한 시선도 받지만 심은석의 법 인식은 매우 명확하다. 그는 교화를 통한 갱생의 태도를 견지하는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에게 “보여줘야죠. 법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야죠. 사람을 해하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자기 새끼 아깝다고 부모가 감싸고돈다면 국가가, 법원이 제대로 나서야죠. 그러라고 우리 모아놓은 거 아닙니까?”라고 항변한다. 또 강원중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자신의 법정에는 감정이 없다면서 ‘신속한 재판’ 원칙을 강조하는 나근희(이정은)를 향해서는 “왜 재판을 속도로 처분합니까?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해서 놓쳐버린 아이들, 그 피해자들은 대체 누가 책임지는데요? 그거야말로 일의 효율이 아니라 무책임 아닌가요?”라고 따진다. 심은석의 항변에서 공적 제도로서의 법에 대한 사회적 불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심은석 판사의 소년법정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이 드라마의 설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암담하다.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더 나아가 법정을 조롱하는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촉법소년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잔인하고 포악해지는 소년범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여론을 반영하여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물론 ‘교정과 교화를 통한 갱생’의 희망을 포기하면 곤란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소년법정이 가해자의 교정과 교화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피해자가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촉법소년의 갱생과 사회적 격리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절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