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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쩐’ 황기석…‘공정’ 앞세우며 수사·기소 전횡, 현실인가 픽션인가

등록 2023-02-18 10:00수정 2023-02-18 11:52

[윤석진의 캐릭터 세상 31] <법쩐> 황기석
에스비에스 제공
에스비에스 제공

“우리 사우가 내를 억수로 챙긴다 아이가.” 서울 명동의 악명 높은 사채업자가 자랑하는 사위의 직업은 검사다. 검찰청 실세로 전도유망한 사위는 현란한 법 기술로 폭력과 살인교사 등의 불법 행위를 일삼으며 검은돈을 축적하는 사채업자 장인을 보호해준다. 사위 덕분에 제1금융권 회장으로 변신한 장인은 주가 조작으로 걸려도 “법적으로 수사 한번 해보이소. 나는 깨끗합니다”라고 당당해한다. 사채업자의 딸은 대통령 영부인을 꿈꾼다. “아빠 돈으로 대한민국에 못 사는 집이 없는데, 딱 하나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돈만으로는 안 돼”라면서 검사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세종로 1번지’에 입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검사 남편과 요리연구가 부인은 “청년층에게는 밉지 않게 부러운 모델이고, 중장년층에게는 단정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로 어필되는” 부부로 정치적 인지도를 올린다.

자본시장의 검은돈과 검찰의 결탁을 파헤치는 드라마 <법쩐>(에스비에스)에서 연출한 극적 상황이다. 황기석(박훈)은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야심으로 권한을 남용하는 정치 검찰이다. 지난 정권의 국정과제였던 ‘검찰 개혁’의 여파가 가라앉기는커녕 확산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검찰 조직에서 황기석은 ‘황 셰프’로 불린다. 어떤 사건이든 상관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실력 때문이다.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요리하면서 검찰의 실세가 되었다. 검사로서 그의 실력은 ‘공정, 정의, 인권, 청렴’의 가치와 거리가 멀다. 장인의 돈으로 검찰 수뇌부를 장악할 정도로 권모술수가 뛰어나지만, 대외적으로는 공정과 정의의 수호자로 통할 만큼 언론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나다. 대형 증권사 비리 수사로 ‘여의도 암행어사’라는 호의적 여론이 형성되자 방송에 출연해 “공매도 비리 사건의 경우는 개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민생 범죄”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물론 공매도를 악용하여 주가 조작을 일삼는 사채업자 장인만큼은 예외이다.’

에스비에스 제공
에스비에스 제공

황기석은 “영장 없이 긴급체포해서 카메라 앞에 세워서 그림부터 만드는” 법 기술을 현란하게 구사한다. “선거 앞두고 쓸데없는 정치 공세에 휘말리는 건 검찰 전체 부담이란 거 몰라?”라며 후배 검사들을 질책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그는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 거래에 필요하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한다. 야당 후보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엮기 위해 벤처기업 장부를 날조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심지어 검사장 출신의 금융사 대표 유서를 허위로 작성하여 사채업자 장인의 살인 행위를 은폐하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법 기술자를 넘어 살인의 공동정범임이 분명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황기석의 불법과 탈법은 심각한 범죄 행위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면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기에 더욱 위험하다. 그의 자가당착을 폭로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벤처사업가였던 어머니가 야당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조작 수사로 극단적 선택을 할 당시 황기석의 후배 검사였던 박준경(문채원)이 오랜 준비 끝에 복수에 나섰다. 명동 사채업자의 오른팔에서 사모펀드의 투자 총괄 책임자로 변신한 은용(이선균)이 자신의 조카이자 형사부 검사인 장태춘(강유석)을 움직여 박준경을 돕는다. 하지만 황기석의 조작 수사를 폭로하려던 박준경의 기자회견은 수포로 돌아간다. 황기석이 여당 중진의원 채용 비리를 수사하면서 여당 지지율이 내려갔다는 야당 대표의 결정 때문이다. 검찰의 ‘캐비닛 수사’가 떠오르는 극적 상황이다.

황기석을 상대로 “쩐에는 법으로, 법에는 쩐으로!”를 외치며 치열하게 벌이는 박준경과 은용의 수 싸움을 지켜보는 마음이 마냥 즐거울 리 없다. 검찰 수뇌부를 움직여 대검 감찰부를 무력화하는 황기석의 대응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갖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검사 관련 사건에는 공정한 잣대를 대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의 문제적 현실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금융 피해를 발생시키고도 “니는 결국에는 나의 개”이니 “열심히 뛰어 댕겨가 사태 수습 잘하자, 알았지?”라고 검사 사위를 겁박하는 장인이 세상에 있을까마는, 공정과 정의의 모호한 의미만큼 그 또한 알 수 없는 시절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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