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
■ 산천초목에 깃든 동양의 판타지
〈산해경〉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단혈산이다. 이 산에는 봉황이라는 새가 사는데, 닭처럼 생겼지만 화려한 오색깃털을 지녔다. 머리의 무늬는 ‘덕’(德)자의 모습을, 날개의 무늬는 ‘의’(義)의 모습을, 등의 무늬는 ‘예’(禮)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봉황은 자유자재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산해경>의 한 대목이다.
중국 고대의 기서인 <산해경>은 원저자와 출간연대가 분명치 않으나 한나라 유향·유흠 부자가 18권으로 정리한 것이 현전본의 기본이 됐다. 지리·역사·종교·문학·철학·민속·동물·의약 등 온갖 분야를 아우르는 백과전서 성격의 문헌이다. <산해경>은 산경(山經) 5권과 해경(海經) 13권으로 짜였다. 산경은 오방 산천의 형세와 동식물, 특이한 괴물과 신령에 대해 서술한다. 해경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풍속과 사물, 신들의 계보와 영웅의 행적, 여러 괴물 등 기괴한 이야기들이 풍부하며 신화적 성격이 짙다. 현대과학이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설화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자연과 우주에 대한 고대인의 사고체계와 표현방식을 인정하는 순간, 이 책은 한갖 ‘기서’에서 풍부하고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가득찬 동양 판타지 문학의 보고로 바뀐다. 삽화와 자료사진이 풍부해 읽는 맛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발평·예태일 편저, 서경호·김영지 옮김/안티쿠스·2만8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선비’ 오주석의 우리미술 예찬
〈오주석의 독화수필 그림 속에 노닐다〉
그는 “나는 전생에 딸깍발이 남산골 서생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전셋집에 비가 들어 서재에 물받이용 대야를 늘여놓고 방 바닥을 적신 물을 훔치는 동안에도, 마음이 쓰이는 곳은 책과 슬라이드 뿐이었다니 그럴 법도 하다. <그림 속에 노닐다>는 2005년 49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국미술사가 오주석의 수필을 모은 책이다. 그는 생전에 <한국의 미 특강> 같은 책과 대중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 미술을 보는 눈을 틔워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사료를 읽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선비이기도 했다. 양계를 쳐봤다는 청중의 지적을 받아들여 <모계영자도>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바로잡았다는 대목에서 엄정하게 그림을 읽었던 자세가 보인다. 옛 화가들이 앞이 좁고 오히려 뒤가 넓어지는 ‘역원근법’을 썼던 이유를 그리는 대상을 존중했던 마음으로 보는 부분에선, ‘옛 그림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 생각이 읽힌다. 우리 미술의 훌륭함은 반복해 강조한다. “우리 것은 무조건 좋아”라고 주장하는 국수주의자라서가 아니다. 한국미술 전시회장에서조차도 품위를 위해(?) 당연히 서양 클래식 음악을 틀 정도로 천덕꾸러기 취급 받는 겨레문화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으리라. 오주석 지음/솔·1만30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놀자’ 전도사들의 유쾌한 시비
〈ESC-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
일상이 탈출의 대상으로 전락한 시대. 곳곳에 아이디어와 선전이 넘치지만 대개 블로그의 글처럼 금세 휘발되거나 때지난, 그조차 ‘일상’이다. 대학가 음식업태가 1년여마다 찜닭-불닭-삼겹살집 따위 궤적으로 지네발처럼 쓸려갔다 쓸려오니 도리도 없다. 재미의 ‘원형질’이 더 갈증나는 까닭이다. 한철 발리나 파타야가 아니라 누구보다 제 손님 기다려왔던 공항과 진정 ‘해후’하고 옛시절 문방구를 다시 부른다. (아 그곳, 새로운 또는 아직도 별천지로구나!)
<한겨레> 이에스시(ESC)팀이 펴낸 〈ESC-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의 제안들이다. 매주 후볐던 부암동, 와인, 카메라 따위 놀거리를 추려 앞으로 5년은 유효할 법한 알짬 정보를 더했다. 그럼에도 책은 정보서로 불리길 마다한다. 정의 지키느라 ‘놀 틈’ 없는 스파이더맨의 짙은 회의로 서두를 연 것은 ‘인간은 일하려 쉬는가, 쉬려고 일하는가’ 올돌히 던지는 유쾌한 시비다. 이제 책의 효용성을 보자. ESC팀은 한겨레에서 가장 ‘싱거운’ 기자들만 모았다. 얄궂다.고경태 팀장이 사람 웃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조차 ‘놀자’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놀고 있다’. ‘놀다’가 어원이 되어 노름이 되고, 노래가 되기도 한다. 누구와, 무엇과 함께 하느냐, 그차이다. 〈ESC〉를 만드는 사람들 지음/한겨레출판·12000원.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그림 속에 노닐다〉
그는 “나는 전생에 딸깍발이 남산골 서생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전셋집에 비가 들어 서재에 물받이용 대야를 늘여놓고 방 바닥을 적신 물을 훔치는 동안에도, 마음이 쓰이는 곳은 책과 슬라이드 뿐이었다니 그럴 법도 하다. <그림 속에 노닐다>는 2005년 49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국미술사가 오주석의 수필을 모은 책이다. 그는 생전에 <한국의 미 특강> 같은 책과 대중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 미술을 보는 눈을 틔워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사료를 읽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선비이기도 했다. 양계를 쳐봤다는 청중의 지적을 받아들여 <모계영자도>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바로잡았다는 대목에서 엄정하게 그림을 읽었던 자세가 보인다. 옛 화가들이 앞이 좁고 오히려 뒤가 넓어지는 ‘역원근법’을 썼던 이유를 그리는 대상을 존중했던 마음으로 보는 부분에선, ‘옛 그림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 생각이 읽힌다. 우리 미술의 훌륭함은 반복해 강조한다. “우리 것은 무조건 좋아”라고 주장하는 국수주의자라서가 아니다. 한국미술 전시회장에서조차도 품위를 위해(?) 당연히 서양 클래식 음악을 틀 정도로 천덕꾸러기 취급 받는 겨레문화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으리라. 오주석 지음/솔·1만30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놀자’ 전도사들의 유쾌한 시비
〈ESC-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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