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
■ 붓끝에서 피어난 장삼이사 인생
〈인생만화〉
누구나 저마다 제 인생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세상은 당신더러 엑스트라라며, 아주 자주 차가운 등을 내보이곤 한다. 적어도 당신이 성공한 사업가나 수능 1등생, 혹은 잘나가는 연예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겨레〉에서 칼날처럼 매서운 풍자로 뒤구린 이들의 등골을 서늘케 했던 박재동 화백이 일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순간을 그리고 써서 책으로 엮었다. ‘인생만(萬)화(花)’. 책 제목이 말해주듯, 매일 만나면서도 얼굴하나 변변히 기억하지 못했던 이웃들이 그의 붓끝에서 주인공으로, 꽃으로 피어난다. 길거리 매점 아줌마와 인도에서 온 이주노동자, 불닭 배달하는 작곡가 지망 청년 등, 이 특별할 것 없는 인생들 덕분에 코끝이 시큰해지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마음까지 화사해지는 건, 비단 박 화백이 시커먼 신문잉크 대신 알록달록한 수채를 선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하철 안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조는 여학생에게 ‘자거라 얘야. 너희에게 무슨 낙이 있겠니?’라고 위로를 건네는 그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집밖을 나설 때마다 시멘트 갈라진 틈 사이에 핀 들풀과 뒹구는 낙엽, 종종거리는 사람들에게 매번 눈길을, 발길을 잡혀버리는 ‘천형’을 받았다고 행복한 엄살을 부리는 그가 마냥 부러워진다. 박재동 글·그림/열림원·1만2000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20년 걸쳐 써내린 유럽좌파 역사
〈더 레프트-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1848년 혁명 이후 유럽 좌파에 대한 백과전서적인 책이다. 1천쪽이 넘는 이 책을, 제프 일러 미국 미시건대학교 석좌교수는 20년에 걸쳐 완성했다. 그가 이 책을 탈고하는 동안 유럽 좌파 또는 사회주의는 1989년 소련 붕괴와 동유럽혁명이란 ‘사회주의의 종언’을 맞았다. 그의 지적대로 “이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생명력을 다했다. 대중의 인식 속에서, 특히 공적 논쟁에서 허용되는 언어 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은 반향을 모두 잃어버렸다.” 지은이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1860년대에서 1989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경계선을 전진시킨 … 극적인 순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좌파의 급진 민주주의적 힘이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 좌파가 싸우면서 이루려 했던 정치적 가치는 이제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는 가치가 되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고증한다. “이 책은 단연코 묘비명이 아니다. … 자본주의가 윤리적·평등주의적 비판에 면역력을 갖게 되지 않는 한 사회주의의 주장은 여전히 급진적 민주주의와 희망을 위해 절대로 필요할 것이다”라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책은 유럽 좌파의 “결점과 생략을 합리화하려 하지도, 범죄에서 눈을 돌리려 하지도, 아깝게 놓친 기회들을 낭만적으로 그리려 하지도” 않는다. 제프 일리 지음·유강은 옮김/뿌리와이파리·5만원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 직장 박차고 지구촌 오지 책 선물
〈히말라야 도서관〉
마이크로소프트 중국 지사의 2인자. 거액의 스톡옵션과 연봉이 따라오는 자리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고급 주택과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는 일상이다. 그 일상에 기꺼이 동참하는 매력적인 애인도 있다. 하지만 휴가차 히말라야에 갔던 그는 여행이 끝난 뒤 ‘이 모든 것’을 주저없이 버렸다. 도대체 히말라야에 뭐가 있었길래 …. 〈히말라야 도서관〉의 지은이 존 우드는 여행길에서 알게 된 네팔 교육재정 담당관을 따라 한 두메 학교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책이 없는 500명의 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책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단지 책 몇 권을 한 학교에 보내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교육’이 필요한 전 세계 오지에 학교와 도서관을 짓고 책을 보내는 일이 그의 심장을 달뜨게 했다. 그는 ‘히말라야 이전의 삶’을 정리하고 자선단체 ‘룸 투 리드’를 설립했다. 또 비즈니스계의 심장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저돌적인 추진력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초고속으로 자선 ‘사업’을 확장했다. 그리하여 10년 만에 네팔·베트남·캄보디아·스리랑카 등 오지에 3천 곳이 넘는 도서관을 짓고 100만 권이 넘는 책을 전했다. 〈히말라야 도서관〉은 진정한 꿈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 줄 알았던 한 남자의 ‘자서전’이자, 자선과 비즈니스의 환상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경영서’이기도 하다. 존 우드 지음·이명혜 옮김/세종서적·1만원
전정윤 기자ggum@hani.co.kr
〈더 레프트-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히말라야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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