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 위기 몰린 루소의 반박문 등 엮어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일생은 영광과 비참이 극심하게 뒤섞이는 드라마였다. 1762년 <에밀>과 <사회계약론>이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이로써 쉰일곱 루소는 근대 사상의 한 정점을 구현하게 된다. <에밀>은 근대 교육학의 원류가 됐으며,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이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이론적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이 영광스런 저작들은 그의 삶을 곧바로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 책의 ‘불온성’을 이유로 프랑스 의회가 책을 압수해 불태우라고 명령하고 저자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된 루소는 조국 제네바로 가려 했으나, 제네바 의회마저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어 제네바 검사장 장 로베르 트롱섕이 익명으로 써 출간한 <시골에서 쓴 편지>는 쫓기는 루소의 등에 활을 쏜 격이었다. 프로이센의 시골에 은신한 루소는 장문의 반박문을 썼다. 그것이 바로 <산에서 쓴 편지>다. 한길그레이트북스의 하나로 나온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는 루소의 출세작이 된 ‘학문예술론’과 함께 이 <산에서 쓴 편지>를 번역해 묶은 것이다. 이 편지에서 루소는 자신에게 퍼부어진 온갖 비난과 법을 앞세운 비열한 공격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법이 폭정의 보호자로 이용될 때 그것은 폭정 자체보다 더 해롭습니다.” 역사의 승자는 루소였다. 그의 사후 터진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파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혁명의 정전으로 삼았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궁예는 정말 미치광이였을까
〈태봉의 궁예정권〉
주말 저녁이면 아버지를 ‘텔레비전 귀신’으로 만들었던 드라마(‘태조 왕건’)가 있다. 궁예는 금빛 (유치)찬란한 복장에 외눈을 부릅뜨며 “난 니 마음을 다 읽는다”는 관심법을 떠들었던 비정상적 인물이었고, 이는 지금까지의 궁예를 대변했다.
하지만 모든 역사적 경계는 거센 소용돌이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잉태한다. 신라 말기, 자식을 팔아 생계를 도모할 지경이었던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나라(후고구려)를 세웠던 이가, 그저 ‘미치광이’에 불과했을까. 모든 주류 역사가 그렇듯, 궁예와 궁예 정권 관련 자료들은 대체로 왕건을 합리화하기 위해 부정적인 면을 과도하게 부각한 혐의가 짙다. <태봉의 궁예정권>은 몰락한 진골귀족 출신 승려 궁예가 어떻게 고단했던 농민들의 밑바닥 정서를 끌어당기고, 호족들의 지지를 모아냈으며, 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두루 살핀 본격적인 궁예 연구서다.
스스로 강조한 ‘미륵불의 전지전능함’이 결국엔 ‘공포정치’로 변질돼 비참하게 끝을 맺지만, 지은이는 이런 과정 역시 성격파탄자의 행패가 아닌 정치적인 결정이었다고 해석한다. 부인과 두 아들까지 해치는 과정엔 부인 강씨로 대표되는 반궁예세력이 두 왕자를 앞세워 신정적 전제주의에 도전하려는 정황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사료를 통해 꼼꼼히 분석해낸다. 하지만 궁예는 민중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권력을 나누는 데 인색했고, 결국 뒤안길로 사라진다. 역사의 경계를 넘어가는 지금, 다시 한번 곱씹어볼 대목이다. 조인성 지음/푸른역사·2만원.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연방 붕괴 뒤 격변의 러시아
〈붉은 광장의 아이스링크〉
소비에트연방을 겪은 러시아 땅에선 이상과 현실이 모호하게 섞여 있었다. 소비에트는 이상적인 사회를 선언했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소련 붕괴 뒤 러시아 사람들은 ‘순수’의 탈을 벗었다. 스탈린 시대 사람들은 이혼을 수치스럽게 여겼지만, 요즘 러시아에선 재혼하지 않은 이들이 오히려 드물다.
러시아 사회는 본격적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현실에 내줬다. 그리고 독특한 모습으로 변했다. 서방 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들여온 ‘짝짓기 리얼리티쇼’에는 소비에트의 흔적이라곤 없다. 생필품 부족으로 길게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은 사라졌고, 명품상점이 모스크바 거리를 메웠다. 고전적 여성상이었던 ‘카추샤’는 사라지고, 성매매와 스캔들이 대륙을 달군다. 전통적인 실용주택 ‘다차’ 대신, 사람들은 서구식 타운하우스에 열광한다. 물질주의에 지친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시절의 문학에 최근 다시 관심을 갖기도 한다. 취업과 교육이 보장되고, 학문과 문화가 존중받던 시절이었다. 무시무시한 스킨헤드의 행패 따윈 없었다. ‘잃어버린 소련’에 대한 향수인 셈이다. 응답자 51%가 스탈린이 현명한 지도자였다고 답한 조사도 있었다. ‘포스트 소비에트’의 변화 과정과 결과는, 아직 끝나지 않은 20세기 최대 실험의 기록이다. <붉은 광장의 아이스링크>는 이를 위해 학계 전문가 5명이 머리를 맞대 내놓은 현대 러시아 입문서다. 김현택 외 지음/한국외국어대출판부·1만8천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태봉의 궁예정권〉
〈붉은 광장의 아이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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