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 노인들 사랑 다룬 강풀식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한국 만화가 청소년의 전유물에 그친다는 비판은 이야깃거리가 청소년 취향에만 머물러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때문에 인터넷 만화가 강풀씨가 작품마다 몰고다니는 하루 수십~수백만의 조회수는 “만화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는 없다”는 진리와 당위를 뚝심있게 웅변해준다. 6번째 장편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엔, 행여 상상만 해도 ‘노망’인 줄로 알았던 70대의 애틋한 사랑을 담았다. <죽어도 좋아>의 <순정만화> 버전이랄까. 홀로 파지를 주워 버겁게 ‘일수 찍듯’ 여생을 채워가는 송씨 할머니와 사별한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우유를 배달하는 김만석 할아버지가 새벽길 만난다. 필연은 언제나 우연을 가장한다지만, 70대엔 그조차도 겨를없다. “티격태격 다툴 시간도 없”(3권 46쪽)는 나이, 연정은 20대의 그것보다 절실하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올지도 모”(3권 88쪽)르니 송씨를 마음에 둔 만석은 애가 탄다. 암에 걸린 아내와 함께 목숨을 끊는 장군봉 할아버지, 송씨가 늘그막의 행복만 기억할 수 있게 자신의 죽음을 감추는 김만석은 이로 하여 각각의 연인에게 영원한 70대가 된다. 지난 4~9월 인터넷으로 연재되는 동안 6만건의 댓글이 붙고, 여럿 울었단다. 웃음을 구걸하거나 보채진 않는다. 식욕 돋우는 양념 깻잎 씹듯 군데군데 고소하다. 한국 만화도 그렇게 지평이 무장 넓어진다. 전 3권. 강풀 글·그림/문학세계사·각 권 9200원.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역사가로서의 푸코’ 읽기
〈푸코에게서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미셸 푸코(1926~1984)는 통상 철학자로 분류되지만, 그의 저서는 흔히 접하는 철학서와 달랐다. 논리적 방법을 따르는 개념의 연쇄는 푸코의 저술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역사학적 자료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그는 고문서실에서 발굴한 수많은 희귀자료들을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분류하고 배치한 뒤 거기에 철학적 사유를 얹었다. 고고학적 역사 탐구가 그에게 사유의 질료를 제공했던 것이다. 프랑스 역사가 필리프 아리에스가 “푸코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 역사가가 되었다”고 한 것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이영남(국기기록원 학예연구관)씨가 쓴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는 철학자 푸코의 역사가적 측면을 클로즈업한 책이다. 푸코의 생애와 활동을 살피고 그의 저작을 따라가면서 푸코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푸코와 더불어 역사를 이야기하는 한 편의 긴 에세이라고 해도 좋을 책이 됐다. 정상의 자리를 독차지한 이성의 지배 아래서 ‘비이성’·‘비정상’으로 지목돼 침묵당한 목소리들, 곧 ‘타자’의 목소리들을 복원해 들려주는 것이 푸코의 작업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푸코 자신도 광기와 동성애라는 ‘비이성’의 경계에 선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푸코의 타자 연구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자기 배려’의 한 방식이기도 했다. 이영남 지음/푸른역사·1만3500원.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신화의 주인공은 남자란 편견을 버려!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여신들과 여인들은 주연이 아니다. 더러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주로 남성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이야기 흐름 속에 어머니·아내·딸이거나 조력자·훼방자·유혹자 모습으로,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다.
그런데 영어 교사이자 작가·시인이기도 한 베티 본햄 라이스의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이 신화 속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물론 조연이었던 여신과 여인들이 주연으로 급부상했다고 해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숨겨진 모습이 혁명적으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리스 신화라는 ‘원전’ 속 여신과 여인들의 모습 자체가 가부장제 틀 속에서 왜곡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됐기 때문에 ‘재조명’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존심과 아름다움과 질투’ ‘용기와 독립심’ ‘사랑’ ‘아내와 어머니’ ‘초능력’이라는 주제로 묶인 신화 속 여성들의 ‘백과사전’급 이야기들을 읽는 소득은 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가 ‘히스토리(he+story)’로 왜곡됐던 것처럼, 남성 영웅 중심의 신화 역시 그 이야기가 만들어졌던 가부장제 시대의 산물일 뿐, 태초부터 ‘남성은 주연이고 여성은 조연이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베티 본햄 라이스 지음·김대웅 옮김/두레·1만2800원. 전정윤 기자 ggum@hani.co.
〈푸코에게서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신화의 주인공은 남자란 편견을 버려!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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