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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망사스타킹에 태극기팬티 걸판지게 노는 슈퍼댁

등록 2006-01-26 18:06수정 2006-02-06 15:27

경주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울산의 운흥사지로 바람을 쐬러 갔다. 무대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치던 그녀였지만 언뜻 어색해 보였다. 바람을 쐰다는 것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경주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울산의 운흥사지로 바람을 쐬러 갔다. 무대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치던 그녀였지만 언뜻 어색해 보였다. 바람을 쐰다는 것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소리꾼’ 김명자씨
틀 깨고 신명나는 놀이판 만들려
정통 판소리 대신 ‘또랑광대’ 택해
소리 한자락으로 관객 울리고 웃기고
구경꾼 시름 잊고 환장한다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또랑광대’ 김명자

슈퍼댁으로 통하는 김명자(40)는 동네마다 있는 슈퍼마켓의 주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점방댁이었다. 하지만 슈퍼댁 혹은 수퍼댁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녀가 목청을 돋우어 부른 ‘슈퍼댁 씨름대회 출전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격 판소리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국악의 영역에 당당히 들어서기도 애매한 경계(境界)의 소리다. 나에게는 1976년인가 77년에 그런 경험이 한 차례 있었다. 창덕궁 옆, 공간 소극장에서 공옥진 여사의 공연을 봤던 것이다. 다분히 충격적이었던 그것 또한 소리라고 하기도 뭣하고, 춤이라고 규정짓기도 애매한 경계의 몸짓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전통문화적 상황에서 경계인(境界人)일 수밖에 없었던 공옥진이 표출한 비정형의 몸짓과 걸쭉한 사설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통문화는 곧 궁중문화이거나 사대부들의 문화라는 올가미에 씌워진 채 경직된 권위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랬지 싶다. 그러나 대개의 경계인이 그렇듯이 그니는 고독한 만큼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것처럼 김명자의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또랑광대다. 아직은 낯선 그 말을 풀면 또랑은 우리말로 실개천을 일컫는 것이며 광대는 말 그대로 광대다. 그러니 또랑광대는 광대는 광대이되 또랑 곁에서 노는 광대인 셈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쓰는 말로 바꾸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곳에는 얼굴을 디밀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 정도가 되지 싶다.

그들과 또랑광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로 익숙한 명창 박동진 선생 또한 한때는 또랑광대였다. 그 말은 곧, 아직 실력이 일천하여 중앙 무대에 나서지 못하는 신세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장터 마당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곳에서는 차마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장터를 에돌아 흐르는 또랑 곁에서 소리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어 강사·연출·배우 거쳐


하지만 실력은 넘쳐나지만 아예 매체에는 얼굴을 내놓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도 있듯이 김명자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스스로 또랑광대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박동진 선생은 그 험한 시절을 거쳐 명창으로 나아갔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또랑에서 결판을 낼 심산인 듯 했다. 그곳이야말로 진정 흥겹게 놀 수 있는 곳이며 무대가 강요하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녀는 학원 강사, 연극 연출, 배우를 두루 거친 다음에야 또랑광대가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발길이 저절로 극단을 찾아 갔듯이 또랑광대 또한 그랬다. 그때는 극단 예당을 거쳐 아리랑에서 10년이 넘는 배우생활의 팍팍함에 찌든 때였으니 또 다른 세계를 동경했던 것이다. 또랑광대는 그보다 나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지만 5년여가 지난 지금의 결과는 오십보백보라며 웃음을 지었다. 바쁘기는 또 왜 그리 바쁜지 지난해에는 무려 77차례의 공연을 했으니 4일에 한 번 꼴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더불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대의 엄숙성이 빚어내는 예술 공연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우리는 모든 것을 무대를 통해 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마당에서 벌어져야 하는 굿마저도 무대위에서 정형화되어 가고 있으니 우리들의 잘못은 자못 큰 것이다.

정형화된 예술 공연과는 달라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가 또랑광대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초청했었다. 우리땅밟기라는 문화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나는 일년에 대여섯 차례 우리 소리와 음악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랑광대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려 쥐꼬리 만큼밖에 없는 공연비를 만지작거리며 떼를 쓰다시피 그녀를 모셨다. 드디어 작달막한 그녀가 나타난 날 밤,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은 가히 열광적이었다. 그 후, 답사에 참가하는 사람들로부터 슈퍼댁 공연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그녀의 공연이 잡힌 때에는 전화통에 불이 나기 일쑤였다.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아질 때 마다 나는 그녀를 초청했고 그녀 또한 마다하지 않고 선뜻 나서 주었다.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 안개 낀 변산의 바닷가에서는 선 굵은 망사스타킹에 태극기가 그려진 팬티만 입은 그녀가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판을 뒤 흔들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어느 절집의 가을 음악회에서는 얌전한가 싶더니 단박에 절 마당을 뽕짝이 난무하는 무도회장으로 만들어 놓곤 시치미를 뚝 떼며 소리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내가 본 몇 안 되는 매력적인 여자이다. 그녀의 소리 한 마디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금세 눈시울을 적신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고 판으로 나와서 춤을 추는가 하면 제 아무리 잘 난 사람일지라도 그녀의 호통을 피할 길이 없다. 소리는 소리대로, 사설은 사설대로 또 몸짓은 몸짓대로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묘하게도 얽혀 서로 상승의 기(氣)를 뿜는다. 내 보기에 그 기는 구경꾼들이 지니고 있는 스트레스를 확 씻어 버리는 비약이었다. 그러나 글로는 아무리해도 모른다. 권한다. 슈퍼댁과 한 번 놀아봐라. 그리고 말리지 마라.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 내버려둬라. 그제야 노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소리꾼들도 있었구나 하며 스스로 지닌 문화의 지평이 넓어짐을 느낄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이 알고 있었던 전통 소리는 판소리나 민요로 대표된다. 굳이 따지자면 판소리가 앞서고 민요가 뒤 따르는 격이다. 그럼에도 왜 하필 또랑광대를 택했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대답이 참 곱다. 제각각 모두 가치 있는 것이며 어느 것 하나 우리 것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립국악원은 그들이 해야 할 몫이 있는 것이고 판소리 전수원은 또 그들만의 몫이 있을 뿐이라는 것과도 같다. 그런 만큼 또랑광대 또한 그만의 몫이 있지 않겠느냐며 반문한다. 분명한 것은 소리를 매개로 하는 전통문화 중 어느 것 하나만이 최고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제각각의 그릇이 있는 법이거늘 획일적이며 고급 지향적인 전통문화만이 마치 우리 것의 전부인양 행세를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도 좋은 일이지 싶다.

더구나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대립각을 세우며 비난을 할 시간에 차라리 내 것을 더 사랑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자신이 또랑광대라고 해서 정통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까닭도, 또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 시간에 또랑광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했다. 명품은 명품대로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그 언저리에 머무는 문화 또한 그 못지않게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그것이 짝퉁 명품만 아니라면 우리 모두 아껴도 좋을 것이다.

‘또랑광대’도 그만의 몫이 있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그녀는 스스로를 또랑광대와 같은 신명 넘치는 놀이판을 위한 소모품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거름이며 주춧돌이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천상 광대라고 말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지고 그래서 더욱 강해지는 광대 말이다. 그녀는 까짓 몸 하나 부서지는 것은 마다하지 않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만의 놀이에 빠져 가는 사람들을 위해 21세기의 거대한 굿판을 벌리려는 꿍꿍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믿는다. 그녀가 우리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신명을 밖으로 끌어내는 탁월한 소리와 몸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고 허를 찔리면서라도 함께 놀지 못해 안달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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