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울산의 운흥사지로 바람을 쐬러 갔다. 무대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치던 그녀였지만 언뜻 어색해 보였다. 바람을 쐰다는 것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소리꾼’ 김명자씨
틀 깨고 신명나는 놀이판 만들려
정통 판소리 대신 ‘또랑광대’ 택해
소리 한자락으로 관객 울리고 웃기고
구경꾼 시름 잊고 환장한다
틀 깨고 신명나는 놀이판 만들려
정통 판소리 대신 ‘또랑광대’ 택해
소리 한자락으로 관객 울리고 웃기고
구경꾼 시름 잊고 환장한다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또랑광대’ 김명자 슈퍼댁으로 통하는 김명자(40)는 동네마다 있는 슈퍼마켓의 주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점방댁이었다. 하지만 슈퍼댁 혹은 수퍼댁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녀가 목청을 돋우어 부른 ‘슈퍼댁 씨름대회 출전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격 판소리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국악의 영역에 당당히 들어서기도 애매한 경계(境界)의 소리다. 나에게는 1976년인가 77년에 그런 경험이 한 차례 있었다. 창덕궁 옆, 공간 소극장에서 공옥진 여사의 공연을 봤던 것이다. 다분히 충격적이었던 그것 또한 소리라고 하기도 뭣하고, 춤이라고 규정짓기도 애매한 경계의 몸짓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전통문화적 상황에서 경계인(境界人)일 수밖에 없었던 공옥진이 표출한 비정형의 몸짓과 걸쭉한 사설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통문화는 곧 궁중문화이거나 사대부들의 문화라는 올가미에 씌워진 채 경직된 권위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랬지 싶다. 그러나 대개의 경계인이 그렇듯이 그니는 고독한 만큼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것처럼 김명자의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또랑광대다. 아직은 낯선 그 말을 풀면 또랑은 우리말로 실개천을 일컫는 것이며 광대는 말 그대로 광대다. 그러니 또랑광대는 광대는 광대이되 또랑 곁에서 노는 광대인 셈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쓰는 말로 바꾸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곳에는 얼굴을 디밀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 정도가 되지 싶다. 그들과 또랑광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로 익숙한 명창 박동진 선생 또한 한때는 또랑광대였다. 그 말은 곧, 아직 실력이 일천하여 중앙 무대에 나서지 못하는 신세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장터 마당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곳에서는 차마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장터를 에돌아 흐르는 또랑 곁에서 소리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어 강사·연출·배우 거쳐
하지만 실력은 넘쳐나지만 아예 매체에는 얼굴을 내놓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도 있듯이 김명자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스스로 또랑광대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박동진 선생은 그 험한 시절을 거쳐 명창으로 나아갔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또랑에서 결판을 낼 심산인 듯 했다. 그곳이야말로 진정 흥겹게 놀 수 있는 곳이며 무대가 강요하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녀는 학원 강사, 연극 연출, 배우를 두루 거친 다음에야 또랑광대가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발길이 저절로 극단을 찾아 갔듯이 또랑광대 또한 그랬다. 그때는 극단 예당을 거쳐 아리랑에서 10년이 넘는 배우생활의 팍팍함에 찌든 때였으니 또 다른 세계를 동경했던 것이다. 또랑광대는 그보다 나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지만 5년여가 지난 지금의 결과는 오십보백보라며 웃음을 지었다. 바쁘기는 또 왜 그리 바쁜지 지난해에는 무려 77차례의 공연을 했으니 4일에 한 번 꼴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더불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대의 엄숙성이 빚어내는 예술 공연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우리는 모든 것을 무대를 통해 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마당에서 벌어져야 하는 굿마저도 무대위에서 정형화되어 가고 있으니 우리들의 잘못은 자못 큰 것이다. 정형화된 예술 공연과는 달라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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