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l 글논그림밭(2012)
2001년 봄, 조 사코는 동료 크리스 헤지스와 함께 ‘하퍼스’에 송고할 가자지구 르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사전조사 과정에서 유엔 자료에 단 두 줄로 짤막하게 처리된 사건 하나에 주목하게 된다. 그 사건은 1956년 11월,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전쟁) 당시 이집트 영토였으나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비무장 상태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275명을 벽에 일렬로 세운 뒤 기관총을 난사해 살해했다. 조 사코는 조사 과정에 가자지구에서 유사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함께 하마스를 설립한, ‘팔레스타인의 사자’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는 그와 가진 인터뷰에서 “난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삼촌을 붙잡고 울부짖던 걸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난 오랫동안 잠을 못 잤어요. 내 가슴에는 절대로 나을 수 없는 상처가 생겼습니다. 그 얘길 하다보면 태반은 울 겁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잊히지 않아요. …그자들은 우리 가슴에 증오를 심었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아홉 살이던 그는 이 사건으로 삼촌을 잃었다. 알란티시는 2004년 4월17일, 이스라엘군 아파치 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폭사했다. 이른바 ‘참수작전’의 희생자였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오슬로협정을 맺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등 화해를 추진하다가 1995년 11월4일, 이스라엘의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현재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암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라빈 총리에 대한 모의 장례식 시위를 주도하는 등 극우강경파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2005년 이스라엘은 우익 세력과 정착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자 지구 내에 있던 유대인 정착촌을 해체하여 365제곱킬로미터 면적의 좁은 땅덩이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다.
2006년 이스라엘과 미국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규정된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를 이끌 다수당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파타의 연립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다. 파타와 하마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미국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기도했던 파타는 도리어 가자 지구를 빼앗기게 된다. 이 사건으로 분파에 상관없이 공동의 적 이스라엘을 상대로 하나의 팔레스타인을 추구한다는 원칙이 깨졌다.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 강경파를 대변해온 네타냐후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대신해 강경한 하마스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여 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공격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대항하는 적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정부는 하마스의 저항조차도 필요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56년에 벌어진 학살사건을 조사하던 조 사코를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늘도 당장 이스라엘에 의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는 현장에 와서 한가롭게 과거사나 조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사건이 최근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광동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의 면담에서 “전시 하에서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발언했고,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반복했다. 진실과 화해로 가는 길이 이토록 어려운 까닭은 진실 없는 화해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